박어진/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온 국민이 몰려다닐 7월 말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 친구 둘을 닦달해 떠난 여행. 고속버스로 4시간10분이면 통영이다.
터미널 밖으로 나오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남녘임을 실감케 한다. 시티 투어 코스가 제안하는 대로 중앙시장에서 펄펄 뛰는 횟감을 골라, 바로 옆 횟집에서 소주를 곁들인다. 중앙시장 바로 뒤켠 언덕배기 마을 동피랑도 요즘 뜨는 관광 포인트란다. 젊은 예술가 몇몇이 동피랑의 낡은 집들과 담벼락에 발랄한 그림을 그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디카를 든 젊은이들이 동네 곳곳을 기웃거리는 광경이 보인다. 나이 드신 동네 분들이 웃음 띤 얼굴로 낯선 구경꾼인 우리를 구경하신다.
통영 시내를 빠져나와 달아공원으로 간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240도 각도로 눈에 들어온다. 앙증맞은 크기의 바위섬에 나무 몇 그루가 얹혀 있는 듯 귀여운 모습들도 있다. 보는 이를 절대 주눅 들게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산과 들, 그리고 다도해의 미덕이겠다. 장쾌한 스케일로 여지없이 우리를 기죽이는 절대 장엄의 자연 풍광 같은 건 여기에 없다. 멀고 가까운 섬 봉우리들이 나직하게 겹쳐지며 이뤄내는 선들은 참 아늑하고 만만하다. 오래 같이 살아 그저 덤덤한 아내나 남편을 보는 것같이 편안한 느낌이랄까. 광대무변하지도 않고 현란하지도 않아 한때 우습게 보았던 우리의 자연이 이렇게 정감 넘치다니, 눈물이 찔끔 솟는다.
복날이니 점심은 당연히 ‘복국’이다. 해질 무렵 시내 한복판인 강구안을 어슬렁거린다. 6월부터 8월까지 토요일 저녁마다 공짜 연주회가 있다는 소식이다. 오늘 밤의 주인공은 통영 시민인 색소폰 연주자. 이 무명의 아티스트는 두 시간 넘게 올드 팝부터 세미 클래식, 대중가요까지 방대한 레퍼토리를 풀어낸다. 객석은 열렬한 환호로 시민 음악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느닷없이 옆자리 중년 관객이 소주를 반쯤 담은 종이컵을 불쑥 내민다. 이크, 공연장에 소주 밀반입이라니. 놀라 고개를 저으니 멋쩍은 듯 이번엔 벌떡 일어나 트위스트 춤을 춰대기 시작한다. 오, 이런 분위기, 딱 내 취향이다. 무대 위 시민 음악가는 어린 아들을 불러내어 듀오로 <여행을 떠나요>를 연주한다. 피날레였지만 객석의 앙코르는 한동안 계속된다. 태풍 예보 속에 유월 열이레 달님은 가끔 먹장구름 밖으로 까메오 출연. 그래, 이순신 장군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기에 참 아름다운 광경일 거야. 그분이 지켜내려 목숨을 걸었던 건 바로 보통 사람들의 평화였잖아. 통영의 마지막 날 밤, 나는 달님께 약속한다. “아이 윌 비 백.”
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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