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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열심히 집안일 한 당신 자신만의 여행 떠나라

등록 2008-07-31 18:50수정 2008-07-31 19:43

‘…뿔났다’처럼 뜬금없이 말고
평소 가족들에게 의사표현을
김성혜(41)씨는 지난 4월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을 했다. 동행 없이 혼자서 3박4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온 것이다. “낯선 곳에 가면 내가 보인다고 하더군요.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보고 싶었어요.” 두 아이 돌보기와 밥 챙기기는 과감하게 아이들과 남편에게 맡겼다. “결혼한 뒤 ‘나’란 존재가 무언가에 묻혀 버린 느낌이었어요. 혼자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며 밝은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접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오더군요.” 최근 방영된 <한국방송>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한 장면. 40년 동안 아내와 며느리, 엄마로서 한 집안의 살림을 도맡아 온 김한자씨가 시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1년 동안의 휴가를 얻는다. 가족에게서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이삿짐을 싣고 1년 동안 혼자 살 집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김한자씨는 바람을 맞으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김성혜씨가 제주도에서 터뜨린 웃음과 드라마 속 김한자씨의 웃음은 닮았다. 집을 배경으로 무한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만의 여행’을 떠난 주부의 즐거움이다.

■ ‘일터’ 벗어난 여행 어려워 여성 커뮤니티 ‘줌마네’ 회원인 주부 4명은 지난달 28일 모여 가족을 뒤에 두고 떠난 경험을 나누는 이야기 마당을 열었다. 이들은 늘 ‘밥 해 먹여야 하는’ 가족들의 존재 때문에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오롯이 혼자만의 여행을 해 본 사람은 김성혜씨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으며 회사를 그만둔 김은하(33)씨는 “직장에 다닐 땐 혼자 국외로 출장 갈 기회가 많아서 좋았다”며 출장 경험을 그리워했다. “동남아 나라들에 주로 갔는데, 나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볼 수 있어서 여행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언제든 다시 가 보고 싶지만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느라 집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올해 결혼 30년차인 김해영(57)씨는 10년 전 친구들과 함께 미국에 갔던 것을 유일한 여행으로 꼽았다. “그때 남편에게 ‘내가 당신에게 기여한 게 100만원어치는 넘겠지?’라며 여행 경비 100만원을 받아냈어요. 내 돈도 있었지만 남편에게 받고 싶더라고요.” 김씨는 “그동안 어딜 가겠노라 하면 항상 ‘밥은? 애들은?’ 하며 자신의 불편함부터 내세웠던 남편이 자신의 여행을 인정해 준 것이 뜻깊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뭘 보고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열흘 동안 집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며 웃었다.

줌마네 운영진인 소광숙(44)씨는 “줌마네에서 1박2일 행사를 하면, ‘결혼한 뒤 10년 만에 처음으로 집 밖에서 자 본다’고 하는 이들도 꽤 있다”며 “가족에게 묶여 밖에 나올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혜씨는 “주부에게는 일터인 집을 나서는 여행이 ‘쉰다’는 의미와 같다”며 “제주도에 갔다 온 뒤 ‘제대로 쉬었다’는 생각이 들며 좀 더 의욕적으로 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 소통과 믿음으로 여행 준비를 ‘둘째 아이가 젖을 떼면 밖에 나가겠다’고 다짐했던 김은하씨는 최근 집 밖에 나오며 친구를 만나거나 줌마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조금씩 자기 시간을 늘리고 있다. 김씨 같은 과정을 거쳤다는 소광숙씨는 “저녁밥 안 짓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도 여행이랑 마찬가지”라고 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최근 대학원 과정을 마친 김해영씨는 “내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는 것이 여행과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주부들에겐 집에서 벗어나는 게 곧 자아를 찾는 것이기도 하므로,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가진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여행하려고 힘쓰면서 가족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김성혜씨는 홀로 제주도에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평소 가족들이 알아서 하는 훈련이 돼 있어서”라고 했다. 집안일도 스스로 하며 서로 협력해 왔다는 것이다. 몇 해 전 처음 정동진에 1박2일 다녀오는 등 혼자만의 여행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고 했다.

소광숙씨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뜬금없이 ‘집 나가겠다’고 하면 가족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며 “평소에 자신이 바라는 걸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씨는 “이젠 혼자 1박2일로 어딜 다녀와도 남편과 아이들이 불편해하지 않는다”며 “가족들에게 알리고 소통하기 때문에 믿음이 쌓였다”고 했다.


아내의 여행은 남편의 여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집 밖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찾는 아내를 보고 새로운 사업 구상을 하는가 하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하기도 한다. 홀로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아내·엄마가 일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기 시작하면, 남편·아빠도 자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나홀로 여행’을 위한 도움말

마음자세·안전문제 대비 등
요긴한 사이트·블로그 많아

여성 혼자 여행을 떠난다면 세심하게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용한 정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쟁 피해 여성과 연대하는 여행을 기획하는 등 ‘여성주의 여행’을 내걸어 온 언니네트워크의 ‘시스투어’(unninet.net/sistour)에선 여성 여행자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여행지에서의 치한 퇴치, 여행에서 유용했던 물건들 등 언니네트워크의 회원들이 자신의 경험에 바탕해 올린 글과 댓글들이 생생한 정보가 된다.

여행상품 기획, 여행 관련 콘텐츠 제작 등을 하는 업체인 ‘노매드21’(nomad21.com)도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준다. 특히 ‘여자, 여행을 떠나다’ 섹션에는 여성 여행자들에게 요긴한 정보가 많다. 나라별로 치안이 위험한 곳 등 안전 문제부터 여행지에서의 피부 관리나 마음자세까지 섬세한 도움말을 주고, 여성 취향에 맞는 국내외 여행지를 찾아내 사진과 함께 친절하게 소개한다.

국외 사이트 ‘저니우먼’(journeywoman.com)은 영문이긴 하지만 여행지 정보뿐 아니라 먹을거리, 짐싸기, 쇼핑 등 여성 여행자를 위한 정보도 두루 담고 있다. ‘혼자 여행하는 그녀’라는 섹션엔 호텔에 묵거나 지하철을 탈 때 어떻게 안전 문제에 대비할지, 혼자 먹는 저녁식사는 어떻게 선택할지 같은 유용한 정보들이 있다. 여행지별로 검색해 이미 다녀온 블로거들이 올려놓은 글을 읽어 보는 것도 여행 준비에 도움이 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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