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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엄친아’와 ‘친구엄마’ 카드

등록 2008-08-07 17:35

우효경/칼럼니스트
우효경/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중에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라는 말이 있다. 엄마들이 ‘엄마 친구 아들 OO는 효자에다 공부도 잘한다는데…’ 하며 자식들 기를 죽일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엄마들한테 ‘엄친아’ 카드가 있다면 자식들한테는 ‘친구 엄마’ 카드가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공부 좀 해!’라고 잔소리를 하면 ‘ㄱ아무개네 엄마는 과외를 4개 시켜준다는데’라고 받아치고 엄마가 ‘집안일 좀 해’ 하면 ‘ㄴ아무개네 엄마는 매일 요리책에 나오는 것처럼 밥 차려준다는데’라고 대꾸한다. 또 엄마가 ‘결혼해야지’ 하면 ‘이번에 ㄷ아무개 결혼할 때 엄마가 아파트 해줬다는데’라며 슬그머니 엄마의 입을 막을 수도 있다.

세상에 나만 괴로웠던 사춘기 시절, 직장 여성인 엄마와 싸우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친구 엄마’ 카드를 빼들었다. ‘엄마는 집에도 없으면서 왜 참견이야? 다른 애들은 엄마가 얼마나 신경써주는지 알아?’ 그러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셨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하셨지만 다른 전업주부 엄마들처럼 자식들과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을 항상 안고 계셨던 것이다. 엄마의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얻은 하찮은 승리에 만족했다.

우리 사회 역시 일하는 어머니들에게 냉혹하다. 어머니가 유아기에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가 되기 쉽다는 유아 연구 전문가의 칼럼이 신문에 실리고, 모유를 먹지 않은 아이는 질병에 걸리기 쉽다는 과학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아이가 사고를 당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일차적으로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어머니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몇 년 전 유명 연예인이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진행했을 때 그런 것을 지켜보는 일하는 엄마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변명을 좀 하자면 나는 삐딱한 마음에 엄마의 죄책감을 이용했지만 한 번도 일하는 엄마를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나는 자신의 일을 가진 엄마가 자랑스러웠기에, 촌지 밝히기로 소문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엄마는 학교 안 오시니?’라며 슬그머니 말했을 때 ‘안 오세요, 일하셔야 돼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소풍이나 운동회에 다른 엄마들처럼 참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안해하셨고 나는 그런 미안함이 싫었다. 엄마가 미안해하면 내가 진짜로 불쌍한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올여름, 3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걸어오신 엄마가 퇴직을 하신다.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수많은 아이들을 키워낸 엄마가 세상의 어떤 엄마들보다 자랑스럽다. 낳아주고 키워줬음 됐지 뭘 더 바라리. 엄마, ‘친구 엄마’ 같은 건 진심이 아니었어요.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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