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이 지난 7월 26일 사진전 ‘낮달,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을 뿐이야’ 기념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데뷔 처음에는 큰 무대 욕심이 많았어요. 가수로서의 욕구도 강했죠. 다 갖춰진 앰프, 마이크 용량도 얼마 이상을 요구하고, 대기실 크기와 조명까지 신경을 썼었거든요. 지금은 관객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무대를 준비해요. 가깝고 서로 느낄 수 있고, 안아줄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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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지현씨는 마이크를 잡으면 노래도 말도 거침이 없다. 지난달 26일 서울 나루 아트센터에서 열린 사진전 <낮달,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을 뿐이야>에서도 그랬다. 성폭력피해 지적장애여성들이 찍은 사진전 기념 파티는 조촐했다. 그는 이렇듯 ‘작은 무대’를 고집하는 가수다. 그는 “무대 밑으로 내려와 관객과 같이 호흡하면서 공연을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소통’의 매력에 빠졌다”고 말했다.
지현은 이날 <마스터베이션>이란 곡을 불렀다. 평소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운 노래다. 그녀는 노래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용감하게 셔터 소리를 내며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려고 노력한 자매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에요. 이 노래를 듣고 열심히 따라하시면 자기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내 손끝이 내 온몸을 따스하게 부드럽게 아… 아…
내 온몸에 숨어 있는 내 기쁨을 내 환희를 아… 아…
붉어지는 내 입술을 부드럽게 촉촉하게 아… 아…
내 뜨거운 내 숨결은 쏟아지는 내 욕망은 아… 아… 아…’( <마스터베이션> 노랫말 중에서) 처음에 쑥스러워 하던 30여 명의 ‘언니’ 관객들이 음악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른다. 도중에 앰프의 키가 안 맞아 지현이 직접 손을 보고, 연주 음악이 중간에 잘못 나와 처음부터 노래를 다시 불러야 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래도 지현과 관객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지현, 그는 페미니스트 가수다. “미용사였던 외할머니, 대학교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혈통부터 페미니스트 집안의 기질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그런 그도 출발 때는 어엿한 대중가수였다. 1997년 여성밴드 ‘마고’의 멤버로 데뷔했다. 이후 2001년까지 그녀는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은 물론 국내외 영화제와 각종 문화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고, 시쳇말로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슬럼프가 왔어요” 바쁜 일상, 변화없는 생활은 그의 생리에 맞지 않았다. 슬럼프는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3년간 꼭꼭 숨어 지냈다. 그리고 공백기 동안 그녀는 당연한 것처럼 페미니즘에 빠졌다. 2003년 복귀한 지현은 더 이상 그냥 ‘가수’가 아니었다. 문화기획자,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이였다. 그에 맞는 옷을 찾은 것이다. “어느 날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는데, 그분들이 세상에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분들에게 음악이 위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작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 일반인들의 관심, 정부의 지원… 이런 것이더라고요. 내가 그동안 겉으로만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런 오만한 태도를 깊이 반성한 거죠. 그때부터 다양한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본격적으로 무대를 넓히게 된 거죠.” ‘페미니스트’ 가수답게 지현은 주로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등 소수 여성들과 ‘함께하는’ 무대에 오른다. 위안부 할머니와 탈 성매매 여성들에게 노래를 가르친다. 대학교 성폭력 관련 학칙을 고치는 토론회에서도 그는 자신이 직접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선다. 지현은 여성이 당당한 성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 워크숍’이나 ‘자위 워크숍’을 기획하고, 이를 주제로 한 공연도 거침없이 벌인다. 9월부터는 각 지방을 돌며 ‘성’을 주제로 공연과 워크숍을 즐길 수 있는 ‘토크쇼’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래서 지현은 단지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다. 이번 사진전 무대도 지난 2월부터 스태프로 참여해 ‘공감’의 장애 여성들과 함께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장애와 비장애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속도인 것 같아요. 중증장애인은 소통 시간이 오래 걸려 비장애인들이 30분이면 끝낼 회의를 두 시간에 걸쳐 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 속도를 보면서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음악적인 성장, 2집 음반 계획 등을 생각하면 조급한 마음이 있지만,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 속도에 맞춰 스스로 성장하면 되겠구나 하는 위안을 얻었어요. 남들과 다름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다양한 속도에 대해 좀 더 관용을 베풀어야겠다 싶었죠.” 지현의 데뷔 초 머리스타일은 까까머리였다. 그것은 그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제 더는 까까머리를 고집하지 않는다. 현재 그는 단발머리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까? “예전에는 외적으로 강하게 보이는 것이 내 무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내적으로 많이 성숙해져 무기가 튼튼하니 더 이상 외적인 무기가 필요 없다는 생각에 머리를 기르게 된거죠”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물었다. “2002년에 새움터 언니들과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노래를 불렀을 때”라고 한다. “언니들이 겪었던 상처와 아픔이 전시 공간 안에 울려 퍼지고 그 기운이 내 몸에 들어오면서 과거의 내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노래는 그에게 삶이자 치유의 행위다. 가수로서 그는 2집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까지 백지상태다. 다만 2집은 트로트 앨범으로 꾸밀 생각만은 확실하다. 할머니와 언니들과 함께 좀 더 왁자지껄하며 놀아보고 싶어서다. 글·사진·영상 은지희 피디eunpd@hani.co.kr
내 온몸에 숨어 있는 내 기쁨을 내 환희를 아… 아…
붉어지는 내 입술을 부드럽게 촉촉하게 아… 아…
내 뜨거운 내 숨결은 쏟아지는 내 욕망은 아… 아… 아…’( <마스터베이션> 노랫말 중에서) 처음에 쑥스러워 하던 30여 명의 ‘언니’ 관객들이 음악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른다. 도중에 앰프의 키가 안 맞아 지현이 직접 손을 보고, 연주 음악이 중간에 잘못 나와 처음부터 노래를 다시 불러야 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래도 지현과 관객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지현, 그는 페미니스트 가수다. “미용사였던 외할머니, 대학교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혈통부터 페미니스트 집안의 기질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그런 그도 출발 때는 어엿한 대중가수였다. 1997년 여성밴드 ‘마고’의 멤버로 데뷔했다. 이후 2001년까지 그녀는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은 물론 국내외 영화제와 각종 문화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고, 시쳇말로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슬럼프가 왔어요” 바쁜 일상, 변화없는 생활은 그의 생리에 맞지 않았다. 슬럼프는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3년간 꼭꼭 숨어 지냈다. 그리고 공백기 동안 그녀는 당연한 것처럼 페미니즘에 빠졌다. 2003년 복귀한 지현은 더 이상 그냥 ‘가수’가 아니었다. 문화기획자,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이였다. 그에 맞는 옷을 찾은 것이다. “어느 날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는데, 그분들이 세상에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분들에게 음악이 위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작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 일반인들의 관심, 정부의 지원… 이런 것이더라고요. 내가 그동안 겉으로만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런 오만한 태도를 깊이 반성한 거죠. 그때부터 다양한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본격적으로 무대를 넓히게 된 거죠.” ‘페미니스트’ 가수답게 지현은 주로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등 소수 여성들과 ‘함께하는’ 무대에 오른다. 위안부 할머니와 탈 성매매 여성들에게 노래를 가르친다. 대학교 성폭력 관련 학칙을 고치는 토론회에서도 그는 자신이 직접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선다. 지현은 여성이 당당한 성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 워크숍’이나 ‘자위 워크숍’을 기획하고, 이를 주제로 한 공연도 거침없이 벌인다. 9월부터는 각 지방을 돌며 ‘성’을 주제로 공연과 워크숍을 즐길 수 있는 ‘토크쇼’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래서 지현은 단지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다. 이번 사진전 무대도 지난 2월부터 스태프로 참여해 ‘공감’의 장애 여성들과 함께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장애와 비장애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속도인 것 같아요. 중증장애인은 소통 시간이 오래 걸려 비장애인들이 30분이면 끝낼 회의를 두 시간에 걸쳐 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 속도를 보면서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음악적인 성장, 2집 음반 계획 등을 생각하면 조급한 마음이 있지만,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 속도에 맞춰 스스로 성장하면 되겠구나 하는 위안을 얻었어요. 남들과 다름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다양한 속도에 대해 좀 더 관용을 베풀어야겠다 싶었죠.” 지현의 데뷔 초 머리스타일은 까까머리였다. 그것은 그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제 더는 까까머리를 고집하지 않는다. 현재 그는 단발머리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까? “예전에는 외적으로 강하게 보이는 것이 내 무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내적으로 많이 성숙해져 무기가 튼튼하니 더 이상 외적인 무기가 필요 없다는 생각에 머리를 기르게 된거죠”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물었다. “2002년에 새움터 언니들과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노래를 불렀을 때”라고 한다. “언니들이 겪었던 상처와 아픔이 전시 공간 안에 울려 퍼지고 그 기운이 내 몸에 들어오면서 과거의 내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노래는 그에게 삶이자 치유의 행위다. 가수로서 그는 2집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까지 백지상태다. 다만 2집은 트로트 앨범으로 꾸밀 생각만은 확실하다. 할머니와 언니들과 함께 좀 더 왁자지껄하며 놀아보고 싶어서다. 글·사진·영상 은지희 피디eu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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