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빈곤 여성가장에 경제교육 “힘내세요”

등록 2008-08-21 18:31수정 2008-08-21 23:51

여성 가장들이 재무설계할 때 점검할 점
여성 가장들이 재무설계할 때 점검할 점
한국여성단체연합, 다음달부터
‘빠듯한 수입’ 재무설계 등 조언
두려움 떨치고 자존감 찾게 도움
여섯살 딸을 키우는 정아무개(39)씨는 간호사로 일해 한 달 150만원을 손에 쥐지만 형편은 빠듯하다. 이혼 뒤 빌린 생계비를 갚고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딸이 폐렴으로 입원했을 땐 하루하루 늘어나는 병원비로 무척 속이 탔다고 했다. 그런 정씨에게 ‘돈 버는 방법’이니, ‘재테크의 비결’이니 하는 건 먼 나라 얘기다. “내가 돈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쓸데없는 돈을 쓰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잦아요. 나처럼 적게 버는 사람들에게도 돈의 흐름 같은 걸 짚어 주고 조언해 줄 곳은 없을까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9월부터 두 달 동안 ‘빈곤 여성과 자녀를 대상으로 경제 교육’을 하기로 한 이유다. 이 단체 ‘빈곤의 여성화 해소 운동본부’는 여성부와 함께 각 지역 여성단체 등의 신청을 받아 빈곤 여성 200여명을 상대로 △경제적 자존감 찾기 △나를 위한 재무설계 △자녀들을 위한 경제교육 등을 가르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 교과서도 만들 작정이다.

홀로 가족의 생계와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 가장들에게 돈을 벌고 챙기는 ‘경제 문제’는 무엇보다 힘들고 버거운 숙제다. 혼자서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여성 가장 김아무개(42)씨는 옷수선 가게에서 일해 한 달 50만원으로 지낸다. 이혼한 남편이 남긴 빚을 갚아야 하는 탓이다. 동생 집에 얹혀 지내다 올해 국민임대아파트에 들어갔는데, 보증금 상환과 아파트 관리비 부담이 만만찮다.

김씨가 아는 돈관리는 ‘아끼는 것’ 말고 따로 없다. 아이들은 학원 대신 방과후 학교에 보내고, 외식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자신의 옷을 사는 건 사치다. 저축도 하고 싶지만 더 줄일 생활비가 없다. 주부로만 살았던 김씨는 돈 버는 것조차 낯설었다. “돈을 벌고 관리하는 게 어색해, 마음고생이 참 심했어요.”

이렇게 직업 활동 경험도 없이 갑자기 생계를 떠맡게 되거나, 돈을 많이 벌겠다고 조급해하는 여성들에겐 더욱 경제 교육이 시급하다. 당장 돈벌이가 급하다며 하고 싶지 않은 노래방 도우미 같은 일을 하거나, 돈을 빨리 많이 챙겨놓겠다며 두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다가 건강을 해치는 이들도 있다.

“돈을 아껴도 제대로 아끼지 않으면 당장 가계가 휘청이고, 소비를 줄이기만 하다간 자녀 교육 등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요.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경제 교육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죠.” 김은선 서울여성노동자회 활동가의 말이다.

경제적 자존감 찾기는 경제 교육의 출발점이다. 가난한 여성 가장들은 곧잘 ‘내 팔자가 드세서’, ‘내가 무능해서’라며 빈곤을 제 탓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빈곤이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직시하고, 일하는 여성 스스로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원아 ‘일하는 여성 아카데미’ 책임연구원은 “빈곤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경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찾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뒤 경제교육 전문 업체 ‘에듀머니’가 하는 재무설계 강의가 이어진다. 버는 돈은 적지만 가치 있게 쓰려면 재무설계를 해야 한다는 점을 알리고, 자신에게 알맞은 소비형태를 찾는 방법도 제시한다. 가계부와 현금흐름표를 작성하고, 금융상품을 찾는 방법 등도 배운다.


자녀들을 위한 경제 교육은 건강한 경제 관념을 자녀에게 물려 주려는 교육이다. 용돈 액수와 사용처를 결정하며 부모와 자녀가 함께 돈 쓰기 원칙을 세우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빈곤 여성 가장들에게 긴급 자금을 빌려 주는 단체도 있다. 한국여성재단은 지난 2월부터 ‘여성 가장 긴급지원 캐쉬 에스오에스’ 사업을 시작했다. 여성 가장들에게 연이율 2%로 500만원까지 빌려 준다. 현재 여성 가장 182명이 주거비, 자녀 학비, 창업자금 마련 등에 쓴다며 8억4천만원을 대출했다.

이원아 연구원은 “저소득층 여성 가장들 가운데 ‘돈을 얼마나 더 많이 벌 수 있을까’보다는 ‘적게 벌어도 어떻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나’를 고민하는 이들도 많다”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경제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저임금 여성 절반이 ‘가장’

생계·양육 함께 감당…안정된 취업 지원정책 절실

올해 상반기 한국여성노동자회 상담 창구를 찾은 실직·빈곤 여성 845명 가운데 50.5%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가장이었다. 이혼(29%), 사별(10%), 또는 배우자의 질병·실직 등을 겪은 이들이었다. 곧 가족 생계와 자녀 양육을 함께 책임지면서도 빈곤에 시달리는 여성 가장이 많음을 뜻한다.

내담자의 74%는 최근 여섯 달 동안 받았던 임금이 ‘월 100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일자리에 취업하는 40~50대 여성이었다.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는 여성이 많아 경제적 어려움이 두드러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들은 구직 상담(69.3%), 직업훈련(17.8%) 등의 연유로 이 단체를 찾았고, 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을 호소했다. 일자리 구할 때 어려운 점으로는 기능 부족(32.4%), 나이(30.1%), 일자리 부족(15.2%), 자녀 양육(8.0%) 등을 꼽았다. 20대는 자녀 양육, 30~40대는 기능 부족, 50~60대는 나이 문제를 가장 어려운 점으로 들었다.

그러나 내담자 92.4%가 직업훈련을 한 차례도 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직업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실직 여성들도 훈련 내용을 두고 ‘정보가 부족하다’, ‘취업 보장이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실장은 “저임금으로 가족의 생계와 양육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여성 가장들이 빈곤의 핵심층”이라며, “안정된 일자리를 위해 나이대별 맞춤형 고용정책을 세우고 양육 지원 및 아동복지를 확충하는 등 더욱 세심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