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그 어떤 이념이나 노선에도 100퍼센트 반해 본 적이 없는 나. 신봉하고픈 민주주의마저도 다수결의 행패를 목격하곤 흠칫, 전면적 숭배를 사양하게 됐다. 근데 요즘 채식에 솔깃해졌다. 채식주의라는 말은 완고해 보여 부담스럽다. 채식을 굳이 이념이나 노선으로 분류해야 할까? 먹을거리를 택하는 기준에 모든 동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고매한 세계관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 아름다운 노선과 상관없이 나이 50을 넘을 무렵부터 몸과 마음이 왠지 채식 쪽으로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왜? 그동안 고기를 너무 많이 먹었나? 삼겹살과 소주 없이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나라이고 보니, 나 역시 한동안 삼겹살을 저녁밥 삼아 먹어댔다. 아이들과 외식할 때도 별 생각 없이 고깃집으로 갈 때가 많았다.
그러다 터진 미국 쇠고기 수입 소동. 뉴스 화면에 클로즈업 되는 쇠고기 부위별 처리 과정을 저녁마다 쳐다봤던 몇 달이 지나자, 쇠고기를 먹고픈 마음이 사라졌다. 어찌된 일인지, 쇠고기뿐 아니라 돼지고기, 닭고기에 대한 식욕마저 천천히 잃었다. 그러니 채식 또는 초식이라는 세계로 입문할밖에. 다행인 건 한국 음식의 진정한 핵심은 온갖 나물이라는 거다. 살짝 데쳐 조물조물 무치거나 볶은 우리 나물 반찬이 샐러드보다 한결 은은한 향미를 지녔다고 떠들며 은연중 국수주의적 자세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고기를 덜 먹게 되니 원재료가 가진 담담한 맛이나 나물 맛의 미세한 차이에도 민감해지는 모양. 어릴 적엔 도통 맛이 아리송하기만 했던 도토리묵이나 메밀묵, 있는 듯 없는 듯 겸손한 맛을 진짜로 음미하게 된 것도 요즘이다.
그렇다고 완전 채식을 선언할 처지는 못 된다. 생선을 먹고 치즈를 먹고 달걀을 먹으니 50퍼센트 정도의 채식인이랄까. 내겐 이 정도가 적당하다. 고기를 덜 먹거나 안 먹으니 확실히 몸에 열이 덜 난다.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육식을 많이 하는 건 그 열로 추위를 견뎌내려는 측면이 강하다. 아열대 기후로 변해 가는 나라 국민들이 고기를 많이 먹을 경우 냉방비가 너무 많이 들지 않을까? 채식은 냉방 수요를 줄인다.
무엇을 먹느냐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설명해 준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이겠지. 먹는 것이 달라지면 정말 심성도 변할 것 같다. 풀처럼 순해지고 착해지려나? 내가 식물성 인간으로 조금씩 변해 갈 것이라는 기대, 흥분된다.
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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