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시민 토론회
“무작정 보호보다 대처능력 중요”
“무작정 보호보다 대처능력 중요”
“엉덩이를 특별한 부위로 가르치지 않았다면, 누가 엉덩이를 만져도 아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죠. 그렇다고 누가 자기 엉덩이를 만졌을 때 대처하지 말란 얘기는 아닙니다. 만진 부위가 엉덩이라는 사실보다도, 누군가 내 몸을 함부로 건드렸다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여성자원금고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관으로 시민 토론회 ‘어린이·청소년 성폭력, 드러내기+움직이기+변화시키기’가 열렸다. ‘어린이·청소년 성폭력을 줄일 수 있는가? 원리는 무엇인가?’라는 꼭지를 맡아 토론을 벌인 안백린(15·중3)양의 문제 제기가 새롭다.
안양은 “성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는 인식 때문에 피해자들이 드러내지 못하고 상처를 키우게 된다”며 “성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을 깨야 성희롱·성폭력 등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에 대한 대대적인 캠페인이나 현장교육을 해 ‘성을 친숙하고 개방적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딸과 아들을 둔 김수경씨는 “‘밤에 돌아다니지 마라’고 하는 등 방어 교육이 어쩔 수 없이 절실하긴 하지만, 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성교육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오매 활동가는 “성에 대해 보수적인 우리 사회가 그동안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만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성폭력을 일으키는 권력 관계에 맞설 ‘자기결정권’을 키우는 데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성 문제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성폭력이 ‘폭력’이라는 점을 또렷이 인식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토론회에 참여한 성교육 강사, 보건교사, 대학생 등 시민 토론자 20여명은 성폭력 사실을 말하고 치유받는 ‘드러내기’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해결책을 찾으려 고민을 나눴다. 중학교 보건교사인 김수은씨는 “폭넓은 성교육을 하고 싶지만, 학교에서 성교육 시간이 너무 짧아 몇 가지 핵심만 다루기에 급급하다”며 아쉬워했다. 변혜정 서강대 양성평등연구소 상담교수는 “10대의 성의식이 달라지며, 성희롱·성폭력으로 봐야 할지 등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아졌다”며 “각본처럼 전해져 온 ‘보호 논리’를 넘어, 어린이·청소년들과 함께, 성폭력을 가능케 하는 권력 관계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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