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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갈수록 여성에게 더 가혹한 ‘비정규직 수렁’

등록 2008-08-28 21:48수정 2008-08-28 21:49

갈수록 여성에게 더 가혹한 ‘비정규직 수렁’
갈수록 여성에게 더 가혹한 ‘비정규직 수렁’
2002~2006 고용 형태 성별 비교
이전의 취업형태가 지금껏 영향
‘상태의존성’ 남성보다 배나 높아
최명숙(53·여)씨는 10여년 동안 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해 왔다. 처음 두 직장에서는 계약직으로, 마지막 일했던 곳에서는 용역회사 소속 노동자로 일했다. 모두 비정규직 일자리였다. “정규직이 될 수 있는 통로가 없으니 별수 있나요?” 정규직 룸메이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리가 나지 않을뿐더러 있던 정규직도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그는 “‘호텔업의 꽃’이라며 업계에서는 룸메이드를 전문적인 일로 치켜세우지만, 정작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는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중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룸메이드를 하기 전까지 줄곧 전업주부로 지냈던 최씨로서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직종에 도전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는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정규직으로 옮겨가기 어렵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수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특히 최근 한 연구는 비정규직의 비중이 높은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 노동자들보다 비정규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김우영 공주대 교수와 권현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발간된 <여성연구> 2008년 1호에 실은 ‘비정규 일자리 결정의 동태성과 성별 비정규직 비중의 격차 분석’이라는 연구 논문에서, 여성의 비정규직 ‘상태 의존성’이 남성보다 갑절 가량 높다는 점을 밝혔다. 상태 의존성이란 이전 취업 형태가 지금 취업 형태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를 가리키는 말로, 이전에 비정규직이었던 사람이 지금도 비정규직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면 상태 의존성이 높다는 걸 뜻한다.

연구는 2002~2006년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과거와 현재의 고용형태를 비교해 드러난 상태 의존성을 수치화했는데, 성별 비교 결과 여성의 비정규직 상태 의존성은 0.646으로 남성(0.379)의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전년도 비정규직이던 노동자가 다음해에도 비정규직일 확률도 남성이 최근 4년 동안 40~50% 가량으로 나타난 반면, 여성은 60~70%로 높았다.


성별 정규직-비정규직의 이행확률
성별 정규직-비정규직의 이행확률
여성 가운데에서도 나이·학력·혼인 여부에 따라 그 차이가 드러났다. 나이가 많을수록, 기혼일수록, 저학력일수록, 그리고 서비스·판매직에서 일하는 여성일수록 비정규직 상태 의존성이 높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옮기기가 더욱 힘들다는 점을 드러냈다.

여성 일자리가 많은 서비스 산업에서 여성의 비정규직 상태 의존성이 높다는 사실은, 그동안 제기되어 온 ‘성별 직종 분리’ 현상이 확고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호텔 룸메이드 처럼 여성들이 진입하기 비교적 쉬운 서비스 직종에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일자리를 옮겨도 비정규직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고연령·저학력·기혼 여성의 높은 비정규직 상태 의존성이 가사 부담이나 출산·육아·교육 부담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기혼 여성 가운데에서도 자녀가 있으면, 상태 의존성이 훨씬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으려면 시간과 돈, 노력 같은 ‘탐색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여성은 이런 부담들 때문에 그 비용이 더 커진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정규직 일자리 찾기가 훨씬 어렵다는 얘기다. 이는 거듭 지적돼 온 우리나라 기혼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은 이유를 보여준다.

논문은 “노동자 계층 사이의 자유로운 이동은 노동시장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제고하는 데 필수적”이라며 “비정규직 상태 의존성이 높게 드러난 계층을 대상으로, 정규직 일자리 탐색 비용을 낮춰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출산과 육아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 △저학력 여성에게 특화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나 적극적인 직업 알선 기능 제공 등이 제시됐다. 무엇보다 ‘좋은 일자리’를 늘려서 저임금 서비스 산업 등에서 비정규직 일자리가 지나치게 늘어난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권현지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전혀 못 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동안 교육·훈련이나 경력 관리를 통해 정규직으로 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 일자리 이동에 가장 심하게 발이 묶인 계층이 드러난 만큼,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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