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효경/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20대 중후반, 취직한 사회 초년생 친구들이 직장 상사가 내미는 폭탄주를 원샷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학생식당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요구르트를 원샷한다. 친구들은 내게 ‘팔자 좋다, 부럽다’ 하지만 그래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 때려치우고 학교로 돌아오는 놈은 없더라. 나이가 들고도 계속 공부를 하니 생활비라도 자력으로 충당하려고 나는 참 많은 일을 해 왔다. 조교, 학원 강사, 음식점 서빙, 옷 가게, 번역, 타자 알바, 틈틈이 들어오는 원고 청탁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한 덕분에 나의 아르바이트 경력은 사뭇 화려하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에 관해 깔끔하지 못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한 단체에서 원고 청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기획 설명을 들으며 아무리 기다려도 원고료가 얼마인지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원고 하나 쓰면서 냉큼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껄끄러워 나중에 원고를 보내주며 넌지시 물어보니, 웬걸, 단체의 사정으로 원고료는 줄 수 없단다. 그런 건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학원 강사나 음식점 서빙 일처럼 처음부터 시급 얼마를 주겠다고 시작한 일들도 방심할 수 없다. 고용자 마음 따라 급료가 요동치기 때문에 돈이 통장으로 들어올 때까지는 절대로 안심할 수가 없다. 이번 달은 사정이 안 좋으니 깎고, 생각보다 일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깎고 …. 이미 일 시작했는데 네가 어쩌겠느냐는 태도다. 때로는 가게나 학원의 사정을 봐주며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이의를 제기하면 ‘나이도 어린 여자가 돈은 되게 밝히는구나’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가끔은 ‘자아실현을 위해서라면 시련도 견뎌야 한다’고 연설을 하시는 분도 있다.
직장인인 친구에게 연봉을 물었다가 그런 걸 발설하는 건 회사 안에서도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은 공개하는 기업들이 늘긴 했지만) 말로는 과열된 경쟁을 막고 진정 능력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수를 주는 형태라지만,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모두 하향 평준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 능력제라면 오히려 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돈만 바라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며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즐겁다. 그러나 어쨌든 일을 하는 이유는 생계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더욱 문제다. 제발 돈 이야기는 두괄식으로, 주겠다고 한 돈은 제때에 주자!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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