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어느 일요일. 경기 연천군 산골짜기 원심원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젊은 할머니 두 분이 소요산역까지 태워 달라고 하셨다. 내 딸이 운전하는 차 안 뒷자리에 올라타시자마자 두 분은 각자 자서전을 압축 버전으로 들려 주신다. 낯선 모녀에 대한 아무런 경계심 없이 술술 풀어가던 두 분의 인생극장에 이야기 좋아하는 내 귀가 쫑긋해질 수밖에.
세종대왕의 형님인 효령대군의 17대손이라는 전주 이씨 할머니는 60대 중후반이다. 2남1녀를 낳고 난 뒤 서른다섯에 남편이 딴살림을 차려 30년 넘게 따로 살았다. 군대 간 아들이 훈련 중 크게 다쳤을 때 부대 밖 병원에 입원시켜 주지 않았다. 남편도 없다시피 키운 아들이 행여 잘못될까, 부대로 쳐들어가 부대장과 독대 끝에 아들을 입원시켰다. “눈에 보이는 게 없었던”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어찌나 리얼하게, 그것도 다자간 대화를 녹취한 듯 묘사하시는지. 나는 이야기뿐 아니라 그분의 입체적 스토리텔링 능력에 홀딱 반했다. 그 뒤 딴살림을 했던 남편이 죽자 그녀는 제사를 지낼 권리로 남편을 탈환했다. 생전 남편의 외도 행각에 딴지 한번 걸어 본 적이 없었다고는 하나, 어찌 마음속 아픔이 없었으랴. 한때 시퍼렇게 멍들었을 한 생애를, 그분은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명랑하게 풀어내 놓으셨다.
다른 한 분은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 핑계로 남편은 외도를 일삼았다. 그때마다 상대편 여성에게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부수고 행패를 부렸다. 아직 젊은 나이에 남편이 덜컥 죽자, 아이 다섯을 둔 홀아비에게 다시 시집을 갔다. 남이 낳은 아이 다섯을 키우며 남몰래 흘린 눈물이 한강을 범람시키고도 남을 뻔했다. 옛 남편과 그 연인들에게 못되게 군 죗값이라 생각하며 그 시절을 살아냈단다. 이제 내 자식이 된 5남매와 알콩달콩 사는 요즘이 생애 최대로 잘나가고 있는 시대라나. 두 분 다 부처님께 몸을 의탁한 인연으로 친구가 되었다. 한때 멍에였던 사랑이니 미움이니 하는 끈적한 것들은 휘발해 버린 지 오래다.
내 어릴 적, 할머니들은 모두 엄청난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다녔다.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전수한 이야기에다 자신이 살아낸 삶을 덧붙여 서사로 풀어놓았던 것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스러운 콘텐츠 생산자였던 그녀들. 그녀들의 서사에 70살의 관점, 80살의 관점을 녹여낸다면 대한민국 보통 할머니들의 생애가 뿜어내는 강력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콘텐츠화할 수 있지 않을까?
들꽃의 아우라를 지닌 이들 여신 열전 집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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