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얼마 전 느닷없이 만든 모임의 이름은 ‘한때’다. 일 관계로 한때 가까웠던 동종 업계 종사자 서너명과 관련 업계 인물을 합해 회원은 일곱명이다. 오랫동안 내왕이 없다가 최근 한 선배네 아들 결혼식을 계기로 모처럼 모인 게 모임 결성의 배경. 옛 정을 되살려 또다시 한때의 우정을 누려 보자는 취지겠다. 남녀 비율은 3 대 4, 연령대로는 4070 클럽이랄까. 모임이 정례적이면 모두에게 버겁다. 두 달 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다 불쑥 만나자는 문자가 날아오면 시도 때도 없이 모인다. 회비는 없고 밥값도 각자 나눠 치른다.
무대는 주로 인사동 골목에 있는 밥집. 북어구이 한 접시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산지 표시를 달고 나온 석쇠 불고기 한 접시에 환호한다. 아이들 이야기나 차종, 아파트 평수 같은 데는 별 관심이 없다. 모이는 목적이 맛있는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데 있기 때문. 각자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 하듯 들려준다. 현역 시절의 실패담이나 잘못된 판단, 그로 인해 꼬였던 인간관계를 털어놓으며 스스로를 비웃어 댄다. 우리 모두 한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약점을 방어하기에 급급했고 얕잡아 보일까 전전긍긍했다. 내 진심을 몰라 주는 상대를 원망했지만 나야말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음이 더 진실에 가깝다.
내친김에 각자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내나 남편에게 저지른 만행을 고백한다. 허물없는 사이여서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아내의 노여움을 샀던 남편의 사례 발표가 시작됐다. 맞벌이 부부의 생활비와 경조사비 분담이란 민감한 사안을 둘러싼 오랜 감정 대립에 대해 뒤늦은 반성이 이어졌다. 시댁과의 관계나 아이들의 대입 대장정 기간에 교육관의 차이로 빚어졌던 설전을 재구성해 가며, 아내에게 부당하게 대응했던 사례를 들려주기도 한다. 남녀·부부 사이 성별 장벽이 왠지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다. 한때 상대를 비난하고, 공격하기에 너나없이 에너지를 과도하게 낭비했던 우리가 아닌가? 비방전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공백을 측은지심이 메우려는 모양.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지 않는 그들이 귀엽다. 아니, 사랑스러워지기까지 한다.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의 가열찬 화학 시대가 끝나고 찾아온 화해와 자기성찰의 시대일까? 성호르몬에게 강요당했던 성적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되고 있다면 그야말로 갱년기 이후의 축복일 수밖에 없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한 인간으로 거듭난 ‘한때’ 회원들이 성별·국경을 넘나들며 인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으니. 다가올 노년은 멋진 신세계가 될 것 같다. 그 미지의 영역을 함께할 탐사대원들이 있어 왜 이리 든든한지.
박어진/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