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애인 등 돌봄 도우미, 노동조건 열악
불안정한 일자리에 최저임금 못미쳐
‘바우처’ 제도 탓 고정급 전환 쉽잖아
“서비스 운영주체에 직접 지원 고려를”
‘바우처’ 제도 탓 고정급 전환 쉽잖아
“서비스 운영주체에 직접 지원 고려를”
#1. 2년 전 일하러 나가면 밤중에야 돌아오던 여성 한부모 가장 박주영(40·가명)씨에게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은 가장 큰 고민이었다. 20만원쯤 내야 하는 보육시설을 이용하기엔 월급 60만원이 빠듯했다. 박씨가 방문을 잠그고 출근하면 아이들은 안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지친 몸으로 퇴근하면 집안일은 가득 쌓여 있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저소득층 보육도우미 파견 사업’을 접했다. 보육사가 집에 찾아와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자,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눈에 띄게 건강해졌다. 마음의 짐을 덜어낸 박씨도 자기 계발에 투자해 월 130만원을 버는 조리사가 됐다.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 아이 키우는 일은 참말로 힘들어요. 그걸 도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2. 남편 벌이가 아쉬웠던 김성래(57)씨에게 ‘보육도우미 사업’은 일자리를 찾은 계기였다. 나이가 많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김씨는, 지난해 한국여성노동자회의 교육을 받은 뒤 보육사가 됐다. 한부모 가장인 엄마가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집에 혼자 있어야 했던 경욱(6·가명)이를 보살폈다. 텔레비전만 찾던 경욱이는 동화를 읽어주고 한자도 가르쳐 주는 김씨에게 점차 마음을 열었다. 1년 뒤 경욱이는 당당한 아이가 됐고, 경욱이 엄마도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았다. 김씨는 “일자리를 찾아 돈도 벌고, 경욱이네에도 도움이 된 듯해 뿌듯하다”고 했다.
이처럼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을 돌보는 사회서비스에, 가정에서 돌봄 노동을 주로 맡았던 여성들이 수혜자이자 제공자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2006년 사회서비스업 여성인력은 63.9%로 성별 비중이 다른 산업(50%)에 견줘 높았다. 교육·보건·가사 등 대부분 분야에서 여성 비중이 70%에 근접했다. 사회서비스 수요층도, 자신의 일 때문에 돌봄 노동을 사회에 기대고자 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래서 정부가 사회 서비스 확충에 나선 게 2년 전이다. 2006년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4년 동안 8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 뒤, 해마다 1천억원 가량을 들여 11만개 남짓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엔 간병·가사 도우미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여성 고용 확대 방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보다 못한 임금, 불안정한 노동시간과 노동 기회 등 열악한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노동조건이 문제다. 구로삶터지역자활센터에서 노인돌보미로 일하는 신복순(50)씨의 한 달 벌이는 60만원 가량. 신씨는 “벌이가 적어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그나마 시간에 따라 돈을 받기 때문에, 서비스 신청이 끊기면 일할 시간이 줄어 급여도 그만큼 줄어든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에서 산모도우미로 일해 온 강정숙(46)씨도 비슷하다. 한 가정을 2주 동안 돌보면 60만원쯤 벌지만, 신청자가 없으면 아예 일이 없다. 강씨는 “한 달 동안 일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런 불안정 노동은 ‘바우처 제도’ 영향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우처(서비스 무료 이용권) 제도란 서비스 이용자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용권을 받아, 서비스를 선택하고 이용권으로 결제하는 것이다. △노인돌보미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산모도우미 △가사간병도우미 △지역사회서비스 혁신사업 등에 도입돼 있고, 더 확산될 전망이다. 이용자가 예컨대 노인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으면, 서비스 노동자들은 일할 기회를 잃게 되고 이 서비스를 운영하는 단체도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주연 구로삶터지역자활센터 팀장은 “노동조건이 좋아져야 서비스 질도 높아지므로 고정적 급여를 주는 게 바람직한데, 바우처 제도 때문에 그러기가 어렵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정봉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넘쳐나는데,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대기’해야 하는 ‘비효율’이 일어나고 있다”며 “서비스 운영 주체에게 운영비·인건비 등을 직접 지원해야,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안정시키고 서비스 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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