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범죄 유발’ 통념 탓
집유 판결 44%…평균 웃돌아
더 엄격한 양형기준 마련 시급
집유 판결 44%…평균 웃돌아
더 엄격한 양형기준 마련 시급
이번 청주지방법원 ‘장애 가족 성폭행 사건’ 판결은 성폭력 범죄를 따지는 법원의 양형 판단 기준을 두고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청주지법은 지난달 20일 지적 장애 소녀를 7년 동안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한 혐의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등에게 모두 징역 1년6월~3년에 집행유예 3~4년을 선고했다(<한겨레> 11월24일치 10면).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를 키워 왔고, 앞으로도 피고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점, 한 피고인이 자살을 기도하는 등 가족도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점 등”을 집행유예 근거로 들었다.
성폭력 범죄 가해자에 대해 양형을 정하는 법원의 판단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1995~2004년 10년 동안의 집행유예 선고 비율을 따져본 결과를 보면, 전체 범죄자의 집행유예 비율은 감소해 왔으나 성폭력 범죄자 집행유예 비율은 늘고 있는 추세다. 2004년 전체 집행유예 비율이 35.4%인 데 견줘, 성폭력 범죄의 집행유예 비율은 43.9%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법정 지원을 하는 이경환 법무관은 “성폭력 범행 장소가 가해자의 집이나 근무지라면 선고 형량이 낮거나 집행유예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며 “이는 법원 판단에 ‘피해자가 범죄를 유발했다’는 등의 사회적 통념이 암묵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점,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아는 사이라는 점, 피해자가 합의 뜻을 밝힌 점 등을 들어 ‘온정적인’ 판결을 한다는 것이다.
청주지법 판결처럼, ‘피해자 양육’ 등 피고인의 공과를 따져 형량을 덜어준 판례들도 있다. 2006년엔 10살 처조카를 성폭행한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10년 동안 부양해 왔다”는 등의 이유로 법정 하한보다 낮은 징역형을 선고한 판결이 있었으며, 같은해 10살 조카를 여러 차례 성폭행한 피고인에게 “피해자 부양”을 들어 낮은 징역형을 내린 판결도 있었다. 지난 5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초등학교 교사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39년 동안 교직 생활을 성실히 이행해 왔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사회적 논란이 많았던 뇌물·살인·성범죄의 구체적인 양형 기준안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대법 양형위원회 기준안에는 집행유예에 대한 기준이 없다”며 “성폭력 범죄처럼 사회적 통념이 크게 영향을 주는 범죄는 더 엄격한 집행유예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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