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11월 말, 인도 뭄바이 테러 발생 첫날, 옆자리 미국인 동료가 뉴스를 검색하다 불쑥 내게 한 말. “한국 신문 기사 제목이 똑같아요. 한국 사람이 무사하다는 걸 꼭 기사 제목에 써요.” 헉, 그럼 다른 나라 매체들은 어떻게 하는데? 급히 <시엔엔>(CNN)을 검색하니 ‘경찰, 아홉 명의 테러리스트 포함 87명 사망 발표’란 제목이 뜬다. ‘미국인 사상자 몇 명’ 같은 헤드라인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렴, 전세계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마당에 굳이 자국인 사상자 수를 제목에 내세울 리 없지. 내국인이 주돤 고객인 국내 언론사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는 거잖아. 한국 언론들이 너무 솔직해서 대놓고 ‘자국민 무사’를 떠든 것뿐이라니까. 본능적으로 국내 언론 매체를 변호해 본다.
근데 살짝 켕긴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숨지고 다친 마당에 한국인은 전원 무사하니 안심하자는, 친절한 헤드라인이 과연 적절한지 말이다. 단군 이래 5천년 역사가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만큼의 외부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져 왔기 때문일까? 우린 유독 가족과 집단의 안위에 민감하다. ‘한국인 전원 무사’를 부르짖는 언론의 기사 제목은 이런 모두의 집단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일 터. 뭄바이 사건에서도 내 피붙이, 내 민족이 다치지 않았으니 일단 안심한 뒤 테러 배후 집단과 동기를 분석하기 바쁘다. 결국 강 건너 불구경인 셈이다.
언론의 헤드라인을 민망해하는 나 역시 테러를 당한 인도인들과 외국인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공포를 그대로 체감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기사 제목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나와 남을 노골적으로 구분하고 차별하는 동물적 본능에 대한 부끄러움? 한국인이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한국인만 무사하면 된다는 의식을 들킨 것 같은 쑥스러움?
그보다는 ‘한국인 전원 무사’를 소리 높여 외침으로서 이유 없이 목숨을 잃거나 다친 이들에 대해 우리가 치명적인 무례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 어느 누구의 목숨도 다른 이의 목숨보다 덜 귀하거나 더 귀할 수 없다. 나와 우리에 속하지 않은 이들이 겪는 절망 앞에서 나와 우리의 안전과 행운을 지나치게 자축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것이 온갖 국경을 넘나들며 벌어지는 무차별 테러라는 범죄의 무고한 희생자들과 부상자들을 향한 작은 예의일 것이다.
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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