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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불황땐 ‘배부르면’ 안되나요?

등록 2009-02-25 17:58수정 2009-02-25 22:15

임신·출산으로 인한 불이익
임신·출산으로 인한 불이익
여성 성차별상담 70%가 임신·출산 불이익
경제위기 심화되자 기업들 점점 더 노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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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백화점 부산점에서 일하던 서아무개(32·여)씨는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점포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경기 불황으로 경영 상황이 좋지 않아 인력 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사내 부부로서 같은 ㅎ백화점 울산점에서 일하던 남편은 경기 부천 점포로 전보됐다. 회사 쪽은 “부부가 비슷한 지역으로 옮기게 됐으니 잘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동안 부산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5살, 2살인 두 아이를 키워 온 서씨로서는 “나 혼자라도 점포를 옮기지 않고 싶다고 했는데,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씨는 “사내 부부의 한쪽이라도 그만두기를 노린 부당한 원거리 발령”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 인사 조처 직전, 회사가 여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때 퇴직을 신청한 인원이 예상에 못 미치자, 사내 부부인 서씨 등 4명을 비롯한 여직원 6명을 따로 인사 조처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서씨는 “전보 조처를 희망한 사람도 있으나 2명은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서씨는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냈지만 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19일 ‘육아는 개인적인 문제’라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부산 친정에 맡긴 채 남편과 함께 서울로 옮긴 서씨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평소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받는 차별이 경제위기 속에서 더 노골화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여성들이 먼저 해고됐던 성차별의 과거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해 여성노동 상담전화 ‘평등의 전화’ 상담 내역을 분석해 보니, 성차별 상담 176건 가운데 임신·출산으로 인한 해고·불이익 상담 비중이 71%로, 2007년 59.2%보다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출산으로 인한 해고가 2007년 57건에서 지난해 98건으로 크게 늘었고, 상담 내용이 교육·승진·임금 등 다양했던 300인 이상 대기업 여성 노동자들의 상담에서도 임신·출산 관련이 90%를 넘었다. 김양지영 한국여성노동자회 조사연구부장은 “여성들이 임신·출산 등으로 해고되거나 불이익을 받는 것은 언제나 문제였지만, 경제위기가 닥치며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희 노무사는 “지난해 말부터 부쩍 여성 노동자 해고 관련 상담이 많아지고 있다”며 “외환위기 때 여성들이 먼저 해고된 현상이 지금 경제위기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씨 사례는 외환위기 때 논란을 일으켰던 ‘알리안츠생명(당시 제일생명) 사내 부부 해고 사건’과 비슷하다고 했다. 알리안츠생명은 99년 사내 부부 88쌍의 한쪽 배우자, 대부분 여성에게서 권고사직서를 받았다가 2002년 대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 99년 회사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던 현대자동차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동의 이후 정리해고된 것도 ‘여성 우선 해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근 통계도 이런 현장 상황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열달 동안 50% 이상을 간신히 이어오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12월엔 48.8%로 주저앉았고, 여성 비중이 높은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 고용도 크게 줄었다. 청년층에서는 여성들의 상용직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문제는 여성 노동자가 겪는 불이익에 대한 실태조사도, 이를 막을 장치도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주일 노동부 여성고용과장은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족 양립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에 근거한 개별적 구제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전국적인 실태조사, 근로감독 강화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숙자 여성부 여성경제위기대책추진단 팀장은 “일자리를 잃은 여성들은 새로일하기 센터를 통해 지원하고 ‘여성 친화 기업’ 캠페인을 확산해 모성 보호, 여성 해고 회피에 힘쓰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개별 기업의 경영 조처에 정부가 개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상림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은 “10년 전 겪었던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이 분야에 초점을 맞춘 특별 근로감독이나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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