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화장 4종 세트는 필수?
외국엔 없는 ‘한국형 마케팅’
계면활성제 등 화학성분 함유
환경유해성 논란 다시 불지펴
화장품 줄이는 여성 차츰 늘어
외국엔 없는 ‘한국형 마케팅’
계면활성제 등 화학성분 함유
환경유해성 논란 다시 불지펴
화장품 줄이는 여성 차츰 늘어
주부 유정영(40)씨는 5년 전 화장대에서 영양크림, 아이크림, 루즈 등을 치웠다. 대신 화장을 조금만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유씨는 ‘스킨-로션-영양크림-자외선차단제-메이크업 베이스-파운데이션-트윈 케이크나 파우더-아이라인-아이섀도-마스카라-입술 화장-블러셔(볼 화장)’ 등으로 이어지는 화장을 했다. 10가지 이상을 얼굴에 바르는 것은 기본이었다. 지금은 스킨과 로션이면 끝이다. 학부모 모임 등에 갈 때는 간단히 트윈 케이크를 바른 뒤 마스카라와 입술 화장 등을 더한다고 한다.
“화장을 하면 피부에 문제가 많이 생겨 병원도 다니고, 수입 화장품까지 써 봐도 그때만 좋아질 뿐이었어요. 화장품 사용을 줄인 뒤에 오히려 괜찮아졌죠.” 돈이 남는 것은 덤이었다. 한때 한 달 평균 30만~40만원을 화장품을 사는 데 썼지만, 이제는 1만원가량만 지출한다.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간사는 “최근 ‘석면 화장품’ 논란이 일면서 화장품의 유해성을 문의해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화장품 개발에 필요한 동물 실험에 반대하거나, 화장품 성분의 환경 유해성 등을 고민한 뒤 화장품 사용을 줄이는 사람들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 화장은 당연한 것?
화장의 역사는 뿌리깊다. 기원전 3000년,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는 성직자들이 화장을 했다. 중세에는 화장이 저속한 것으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19세기에 들어서 초기 화장품 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화장품 유통량은 약 7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될 만큼 화장품은 일상품이 됐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정책팀장은 “여성이 화장을 하면 아름다워지고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화장을 하면 아름답다는 것은 대중매체나 사회·문화적인 압력을 통해 만들어진 인식이라고 생각한다”며 “화장의 역사를 보면 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 남녀노소가 화려하게 치장했던 것이지, 여성 모두가 깨어 있을 때면 화장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 한국에만 있는 4종세트? 그럼, 현대 한국사회에서 화장을 적게 해도 괜찮을까? 최근 출간된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의 저자 구희연씨는 “한국 여성들의 화장품 사용이 과다하다”라고 말한다. 구씨가 화장품 과다 사용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은 ‘기초화장품’이다. 이 책의 공저자인 이은주씨는 “기초화장 4종 세트는 한국에만 있는 화장품”이라고 말했다. 5년 동안 화장품업체에서 일했던 이씨는 “모두 발라야 한다고 말하는 스킨, 로션, 에센스, 크림은 점성과 탄성에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다 똑같은 제품”이라고 했다. 외국에는 없는 화장품회사의 한국형 마케팅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대한화장품협회의 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2007년 여성 3541명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 화장품 사용실태 조사를 보면, 쓰고 있는 기초화장품을 묻는 질문에 95.1%가 스킨, 89%가 로션, 74%가 에센스, 61%가 크림을 쓴다고 답했다. 중복 응답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서너 가지의 기초화장품을 동시에 쓰는 셈이다. 장준기 대한화장품협회 부장은 “화장 문화가 달라 한국 여성들이 화장품을 과하게 쓴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기초제품의 소비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세트 구매가 많은 것도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화장품 다이어트 비슷한 화장품을 반복해 쓰는 건, 피부가 화장품의 화학 성분과 자주 접촉하게 만든다. 구희연씨는 “두 개 이상의 기초화장품을 바르고 하루에 이따금씩 바르는 로션을 생각하면, 파라벤 등 방부제나 계면활성제를 날마다 여러 차례 피부에 바르는 꼴”이라며 “여성들에게 ‘당신의 파우치(화장품을 담는 주머니)를 다이어트해야 피부가 젊어진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안소영 팀장도 “현실적으로 화장을 안 하기는 어렵고, 환경이나 건강을 생각해 볼 때 화장을 적게 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5년 전부터 화장품을 적게 쓰기 시작했다는 김점희(42)씨는 “화장을 줄이고 나서 2년 동안은 주변에서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화장을) 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지난해쯤부터는 ‘피부가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발랐다고 하면 안 믿는다”고 말했다. 하병조 을지대 교수(피부관리학)는 “화장품을 무조건 안 쓰기보다는 올바르게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며 “요즘 유행하는 ‘집에서 만드는 화장품’도 안전성을 검증하기는 어려우므로, 화장품을 살 때 계면활성제나 방부제, 환경호르몬 작용을 하는 성분 등이 든 화장품을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해 10월부터 화장품 용기 뒷면에 화장품에 들어간 성분을 모두 적도록 하는 화장품 전성분 표시제를 시행해, 소비자들이 이를 확인하고 살 수 있게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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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만 있는 4종세트? 그럼, 현대 한국사회에서 화장을 적게 해도 괜찮을까? 최근 출간된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의 저자 구희연씨는 “한국 여성들의 화장품 사용이 과다하다”라고 말한다. 구씨가 화장품 과다 사용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은 ‘기초화장품’이다. 이 책의 공저자인 이은주씨는 “기초화장 4종 세트는 한국에만 있는 화장품”이라고 말했다. 5년 동안 화장품업체에서 일했던 이씨는 “모두 발라야 한다고 말하는 스킨, 로션, 에센스, 크림은 점성과 탄성에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다 똑같은 제품”이라고 했다. 외국에는 없는 화장품회사의 한국형 마케팅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대한화장품협회의 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2007년 여성 3541명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 화장품 사용실태 조사를 보면, 쓰고 있는 기초화장품을 묻는 질문에 95.1%가 스킨, 89%가 로션, 74%가 에센스, 61%가 크림을 쓴다고 답했다. 중복 응답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서너 가지의 기초화장품을 동시에 쓰는 셈이다. 장준기 대한화장품협회 부장은 “화장 문화가 달라 한국 여성들이 화장품을 과하게 쓴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기초제품의 소비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세트 구매가 많은 것도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화장품 다이어트 비슷한 화장품을 반복해 쓰는 건, 피부가 화장품의 화학 성분과 자주 접촉하게 만든다. 구희연씨는 “두 개 이상의 기초화장품을 바르고 하루에 이따금씩 바르는 로션을 생각하면, 파라벤 등 방부제나 계면활성제를 날마다 여러 차례 피부에 바르는 꼴”이라며 “여성들에게 ‘당신의 파우치(화장품을 담는 주머니)를 다이어트해야 피부가 젊어진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안소영 팀장도 “현실적으로 화장을 안 하기는 어렵고, 환경이나 건강을 생각해 볼 때 화장을 적게 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5년 전부터 화장품을 적게 쓰기 시작했다는 김점희(42)씨는 “화장을 줄이고 나서 2년 동안은 주변에서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화장을) 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지난해쯤부터는 ‘피부가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발랐다고 하면 안 믿는다”고 말했다. 하병조 을지대 교수(피부관리학)는 “화장품을 무조건 안 쓰기보다는 올바르게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며 “요즘 유행하는 ‘집에서 만드는 화장품’도 안전성을 검증하기는 어려우므로, 화장품을 살 때 계면활성제나 방부제, 환경호르몬 작용을 하는 성분 등이 든 화장품을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해 10월부터 화장품 용기 뒷면에 화장품에 들어간 성분을 모두 적도록 하는 화장품 전성분 표시제를 시행해, 소비자들이 이를 확인하고 살 수 있게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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