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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블로그]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시간이 채 30분도 되지 않는다

등록 2009-06-05 18:36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채 삼십 분도 되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어쩌면 지금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던 날, 그 아침에 뉴스 자막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웠습니다. 너무 놀랐고, 슬픔과 분노, 허망함이 뒤섞여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남편이 출근한 뒤, 계속해서 뉴스는 흘러나왔고, 눈물도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어제 사온 김치거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열무, 얼갈이 배추, 오이소박이를 담글 오이에 부추까지...... 평소 보다 많이 사온 김치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김치를 담가야 하다니......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날그날 해야할 자질구레한 일상의 일들이 있고, 김치 담그는 일이 쓸모없는 일은 아니지만, 어쩐지 슬퍼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이, 특히 전업주부가 정치와 사회에 깊은 관심을 갖기란 쉽지 않겠구나. (물론, 요즘에는 살림을 하면서도 정치, 사회, 교육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내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아이가 없어서 상대적으로 살림에 시간을 많이 뺏기는 편은 아닙니다만...)

남자들은 회사에 나가서, 삼삼오오 모여 노대통령의 죽음, 정치적인 의미 등을 이야기 하겠지요. 퇴근 후에는 소주를 한 잔씩 하며, 어른들끼리 비통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대화 속에서 논쟁이 생기기도 하고 '의견과 더 깊은 관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주부들은 집에서 아이와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청소기를 돌리고, 저녁을 준비할겁니다. 가족을 굶길 순 없을 테니까요...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자물쇠를 문을 잠글 수 있는 '자기 만의 방'과 '일 년에 500파운드의 돈'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버지니아 울프가 이 책을 집필한 것은 1928년입니다. 20년이 모자란 100년전이지만, 여전히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공간과 자기만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지요. 물론,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쓸 때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성들에 대한 인식과 사회에서의 영역도 그 때와 비할 수 없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여성이 일생동안 온전한 '자기만의 방'과 '자기 만의 시간' '자기 만을 위한 돈'을 가지려면, 많은 '부대낌'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아지고, 속이 상하기도 해서 그날 김치를 담그며 맥주를 두 캔이나 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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