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소설가
짐을 싸는 중이었다. 전자우편이 왔다는 신호에 컴퓨터 앞으로 달려왔더니, 그만, 올 것이 와 있다. <한겨레> 여성면을 잠정 중단하게 되었다는 담당 기자의 급한 전갈. 지난밤 늦게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원고를 마감했다. ‘나와 삼성’이란 제목으로 <한겨레>에 20개월째 광고를 보이콧하는 삼성을 향한 애정 어린 질책의 글을. 그리고 지금 하루 만에 칼럼을 다시 쓰고 있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나는 8월 경기 가평의 첩첩산중을 떠나 미국 아이오와로 향한다. ‘한겨레 문학상’ 상금으로 집을 짓고, 별거 뒤 이혼하고, 애가 초등·중학교를 마치고 읍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까지 이곳에서 산 10여년 세월은 내 생애 가장 힘든 시절이었지만 내 안의 힘을 발견한 위대한 시절이기도 했다. 이 칼럼에서도 보고했지만, 난 2년 전 아이오와대학에서 열리는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게 인연이 돼 아이오와대 ‘아시아 태평양센터’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나는 미군과 결혼한 ‘기지촌 여성’을 연구하고 딸은 고등학교를 다닐 것이다. 우리 모녀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 펼쳐지는 셈이다. 떠나기 전 나와 딸은 봉하마을을 순례할 참이다. ‘작은 비석’ 앞에서 딸과 둘이 목 놓아 통곡하련다. 당신처럼,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며 살겠노라고, 당신처럼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사람으로 살겠노라고, 당신처럼 죽는 날까지 강건한 투사로 살겠노라고 ‘우리들의 대통령’ 앞에서 맹세하고 싶다. 2007년 7월, 우리 모녀가 북유럽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했던 이 칼럼은 또다시 먼 여행을 앞두고 이별을 고하게 됐다. 이 비주류 작가에게 원고 마감에 시달리는 행복한 고통을 안겨 준 한겨레신문사에 감사드린다. 천방지축 모녀의 이야기를 읽어 준 독자 분들, 특히 ‘공식 1호 팬’인 새벽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물이 되어 주었던 ‘마이클럽’의 ‘선영님’들에게도…. 나이 마흔에 처음으로 이 땅을 떠날 때도 난 근심으로 잠을 못 이루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딸과의 유럽 배낭여행도 세 번을 다녀오자 자칭 ‘달인’이 되었다. 이제 ‘여행하러’가 아니라 ‘살러’ 이 땅을 떠나야 하는 요즈음 난 다시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걱정이 직업병인 엄마와 살다 보니 딸도 벌써부터 언어 장벽으로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니냐고 덩달아 걱정중이다. 그러나 난 믿는다. 세상 어디에나 내 집이 있고 친구가 있다는 것을, 하여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모녀는 그 어디서든 꿋꿋이 잘 살아내리란 걸, 내가 세상에 남길 가장 훌륭한 작품은 바로 내 삶이란 걸.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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