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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2050 여성살이] “무엇이 ‘우리’ 를 엿먹이는가?”

등록 2005-05-31 19:17수정 2005-05-31 19:17

여자로 살아가는 게 힘들다, 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페미니즘이라면 경기하는 남자가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지금 한국에서 저 페미니스트예요, 라고 말하는 건 사회적 자살 행위다. 그런 말을 했다간 잘난 남자건 못난 남자건 모두 당신의 곁을 떠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존재는 ‘이상한 그 무엇’이 되어 있으니까. 못생긴 그 무엇, 개뿔도 없는 그 무엇, 성적 매력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그 무엇, 그래서 인기도 없는 그 무엇, 남자한테 피해를 입은 그 무엇, 그래서 피해 의식으로만 가득한 그 무엇, 세상을 남자와 여자로만 가르는 적대적인 그 무엇…. 그래서 저 많은 여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휴머니스트거든요….” 이것은 달리 말하면 다음과 같다. “절 미워하지 마세요, 전 당신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최근 어떤 남자가 나에게 “넌 이상한 의리 정신이 있더라”라고 했다. 내 책이 도통 안 팔리는 바람에 졸아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는데도, 이놈의 ‘출신성분’은 숨길 수 없이 티가 난 모양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느물거리거나 더듬는 인간이 있으면 철저하게 응징한다고, 굳이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그 인간이 한번 크게 당해 봐야 다른 여자들이 안 당한다고 씩씩거리자 나온 반응이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나도 모르게 “나는…”이 아니라 “우리는…”이라고 시작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걸 ‘조폭적’이라고 욕하면 또 한 번 생각해 봐야겠지만, 의리면 그냥 의리지 ‘이상한 의리’는 또 뭐란 말인가?

그는 나에게 자애롭게 충고했다. 세상을 남자와 여자로만 가르지 마. 나는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었지만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기가 이래서 참 힘들다. 좀만 무슨 말을 해보려고 하면 자칫 금방 징징거리는 게 되어 버린다. 그게 아니면 ‘요즘 세상에 여자라서 안 되는 게 뭐가 있냐’라고, ‘요즘 여자들이 하는 말은 다 핑계’라고, 사람을 순식간에 나약한 인간 취급하기 일쑤다.

물론 선량하고 온건한 남자들이 ‘우리’한테 피해를 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의 고충이란 건 남자 때문이 아니라 단지 무의식적으로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우리를 종종 엿 먹인다는 얘기다. 래리 플린트처럼 말하자면, 나처럼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성격도 발랑 까진 데다 예쁘지도 않은 젊은 여자애의 고충도 고충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진보적인 사회인가. 그러니 이 정도 싸가지는 양해하시길. 진보하겠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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