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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2050 여성살이] “결혼생활에도 ‘안식년’ 도입하라!”

등록 2005-06-07 18:00수정 2005-06-07 18:00

월요일 새벽 5시, 머리맡 핸드폰이 부르르 떨기 시작한다. 남편이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나 역시 비틀대며 부엌으로 나가 냉장고를 연다. 당뇨인 남편의 혈당수치를 점검하고, 호밀빵과 토마토 등으로 도시락을 까다롭게 챙겨주고 나면 5시 30분. 남편이 나갈 때 잠이 덜 깬 아이들은 반수면 상태로 “아부지, 다녀오세요”를 외친다. 5학년 주말부부, 고속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며 일주일이 시작된다.

현관문을 열고 신문들을 집어와 화장하는 틈틈이 읽는다. 나는 신문중독이다. 아침마다 신문 2개를 훑지 않으면 온전한 시작이 아닌 것 같은 증세가 평생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화장이다. 단 한번에 기초화장부터 립스틱까지 모든 것을 일괄 코팅하는 방법이 있다면 분명 화장의 신기원을 열 터인데. 미숫가루와 우유 범벅을 만들어 식탁에 놓고 냉장고 속 식은 밥그릇이 2개가 되는 지 확인하면 출근 준비 완료다. 입을 옷을 아침에 고르려다간 초를 다투게 되니 외출복은 전날 밤에 미리 골라둔다. 아침 시간은 5분이 아쉽다. 일단 출근을 하고 나면 하루 일과 중 60%는 끝난다.

위대한 ‘관성의 법칙’이 관리해 주는 일상을 지금까지 흐트러짐 없이 이어온 내 자신이 기특하다. 주부와 직장인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때로 즐기고 때로 뻐기며 살아온 22년. 나는 나를 마구 칭찬해주고 싶다. 장하다, 5학년! 그러나 제 아무리 ‘다이나믹 코리아’라지만 20대와 30대의 생활방식을 50대에 고스란히 유지한다는 게 생물학적으로 적절한 걸까? 30대에 못지 않는 체력을 50대에 가졌다손 치더라도 때론 일상이 힘에 부치기도 한다.

50대 삶의 속도는 30대와 40대와 달라야 할 것 같다. 결혼과 아기, 그리고 가정을 남부럽지 않게 유지·관리하려고 숨가쁘게 달려온 날들, 나를 짓눌러온 모범답안의 강박을 이제는 좀 벗어 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그외 온갖 역할이 주는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약간 헐겁게 자신을 해방시켜도 민족과 국가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우리 5학년들에겐 뭔가 새로운 생활의 규칙이 필요하다. 이 놈의 결혼생활에는 그 좋다는 안식년도 도입되지 않는단 말인가? 일단 결혼하면 종신임기제일 뿐 아니라 비상탈출구라곤 가출이나 이혼 아니면 배우자 유고라는 극한 상황일 뿐이니. 모두들 ‘열린’ 이란 단어를 좋아하지만 결혼생활은 굳게 닫혀 있다. 가끔 나는 꿈꾼다. 결혼에 안식년이라는 게 있어서 합법적인 일탈이 허용된다면 가출이나 이혼 같은 결혼 탈출 시도는 좀 줄어들지 않을까? 단기 가출이 안식년 컨셉의 연장 선상에서 수용된다면 결혼은 훨씬 더 견딜만할 것 같다.

완경은 여성 모두가 맞이 하는 전환기. 그 전환기에 한 해 쯤 스스로에게 안식년으로 제공해 보는 건 어떨까? 조금 느슨하게 조금 게으르게 생활의 리듬을 조절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것. 몸이 떠나지 못하면 마음속으로 라도 말이다. 여전히 남는 의문. 정녕 결혼이란 다시 돌아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시스템일까? 박어진/ 직장인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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