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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대형마트 나들이 아이 뇌에는 독.

등록 2010-09-20 13:36수정 2010-09-20 14:51

한 대형마트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한 대형마트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베이비트리] 서천석의 행복한 육아
과소비·물신주의 부추기는 대형마트는 위험한 놀이터
처음 대형마트가 생기던 시절 대형마트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나들이 장소가 되었다. 깔끔한 조명 아래 끝없이 쌓여 있는 매력적인 물건들은 현실로 튀어나온 하나의 판타지였다. ‘1+1 행사’처럼 엄마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가격 경쟁력, 코너마다 심심한 아빠들을 달래주는 시식 코너, 실제로 만져보고 고를 수 있는 장난감 코너는 대형마트를 놀이동산에 버금가는 가족 나들이 장소로 승격시켰다.

창문도 없고 시계도 없어 시간 감각을 잃게 하는 곳에서 아이들은 카트를 타고 달리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이제 나갈 때는 내 손에 어떤 것이든 장난감 박스가 쥐어질 거야. 아이들은 카트 창살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아빠 좀 더 빠르게” 하고 외쳐댔다.

대형마트의 인기는 이제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주말에 가면 온 가족이 나들이 온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대형마트라는 곳이 집에서 떨어져 있어 운전을 해야 하고, 운전까지 하고 가서 사는 것이니 많이 살 수밖에 없어 짐을 들 아빠가 필요하고, 부모가 함께 가야하니 어린 아이들만 집에 둘 수는 없는 터라 온가족 출동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대형마트는 물건을 사러 오는 곳이지 절대 나들이 장소는 아니다. 비록 그곳에 푸드코트가 있어 일용할 양식을 먹을 수 있고, 병원과 미용실, 심지어는 아이들 놀이방도 있어 원스톱으로 다양한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과 주말을 즐겁게 보낼 장소일 수는 없다. 아니 가급적이면 아이들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대형마트이다. 대형마트의 사용설명서가 있다면 그곳에는 ‘되도록이면 아이는 데리고 오지 않도록 하십시오.’라는 경고 문구를 넣도록 권하고 싶다.


대형마트는 아이들에게 물건에 대한 현실적 감각을 잃게 한다. 하나의 물건이 만들어지려면 수많은 사람의 노동이 필요하다. 또 물건을 사기 위해서도 부모의 힘든 노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 앞에 엄청나게 쌓여 있어서 별로 값어치 있어 보이지도 않고 쓱 하고 카드로 긁으면 집에 가져갈 수 있는 물건에서 아이는 노동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언제든 갖다 쓰고, 또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물건을 소중히 여기기를 기대한다면 그저 공자님 말씀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다. 대형마트에서 부모는 어쩔 수 없이 과소비와 충동구매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대형마트들은 눈을 끌 수 있는 효과적인 진열 기법만으로도 평균 30%의 매출 증대를 이룬다고 한다. 그 말을 소비자 입장에서 뒤집어 보면 진열의 기법 때문에 우리는 꼭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을 30% 더 사고 있는 셈이다. 싸게 사는 듯 싶어 카트에 물건을 던져 넣지만 알고 보면 사지 않았어도 버틸 수 있었던 물건이 적지 않고 한꺼번에 많이 사둔 터라 아끼지 않고 헤프게 써버리는 경우도 많다. 산더미 같이 물건을 카트에 쌓아 올리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아이는 어른이 갖는 힘을 과소비, 대량소비와 동일시한다. ‘나도 얼른 어른이 되어 이렇게 잔뜩 사는 사람이 될 거야.’

대형마트의 문제점 중 부모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장난감 구입을 두고 벌이는 아이와의 투쟁이다. 아이로선 도저히 부모가 이해할 수 없다. 진료실에서 쉽게 듣는 아이들의 표현을 빌어보자. “엄마는 치사해요. 자기 필요한 것은 다 사면서 내 건 하나만, 그것도 별 볼 일 없는 걸로 사주고 생색내요.” 이 물건들은 엄마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란 엄마의 설득은 통하지 않는다. 아이들이란 필요한 것에 관심이 없다. 갖고 싶은 것, 내 손으로 쥐고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만 내 것이다. 나머지는 그냥 엄마가 필요해서 사는 것이다.

대형마트의 물건 홍수 속에서 아이들은 판단의 준거를 잃는다. 제법 좋은 장난감을 사주어도 만족하지 못한다. 저기 더 좋은 장난감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엄마는 기껏해야 나한테 중간 정도 좋은 물건을 사주니까 아마 날 중간 정도만 사랑하는 거야. 마침 그때 다른 아이의 부모가 더 좋은 것으로 사주는 것을 보기라도 한다면 아이의 확신은 더욱 굳어진다. 우리 엄마는 나를 주워온 것일까? 엄마들은 이렇게 하소연한다. 얘가 가진 것도 좋은 것인데 만족을 몰라요.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만족은 상대적이다. 우리 회사가 다른 회사보다 급여가 높더라도 옆의 직원이 급여가 올라가는데 자신의 급여는 그대로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어른도 못하면서 아이에게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경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 상황이니 감정 조절을 못하는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대형마트 나들이가 만만치 않다. 대형마트에 가면 꼭 보는 장면 중 하나가 아이를 야단치는 부모의 모습이다. 바닥을 걸레질하며 뒹구는 아이도 볼 수 있고 가끔은 아이의 등짝을 후려치는 폭력의 현장도 관찰된다. 아이에게 비싼 물건을 안겼다고 엄마에게 잔소리 듣는 아빠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되고 다신 널 데리고 오면 내가 엄마가 아니라는 식의 협박도 드물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모두 대형마트에 오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왜 대형마트를 찾는가? 꼭 찾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혹시 동네의 슈퍼마켓이나 작은 가게에서 조금씩 사서 쓰면 안 될까? 기름값 빼고 충동구매를 빼도 대형마트가 정말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일까? 조금 불편하지만 아이와 시장을 나들이하며 물건을 고르고 그 속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은 안 되는 일일까?

분명 어쩔 수 없이 대형마트를 이용해야 하는 가족들도 있다. 부부 모두 직장을 마치는 시간이 아주 늦다면 동네의 가까운 슈퍼나 시장을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대형마트는 적절한 나들이 장소는 아니다. 만약 물건을 사야한다면 물건만 사고 얼른 돌아오자. 분명한 것은 그곳이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적절한 장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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