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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앞까지 총알…공포의 열흘” “도로에 주검 뒹굴어”

등록 2011-02-27 19:47수정 2011-02-27 21:47

무사귀환 ‘포옹’ 지난 26일 밤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편으로 리비아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한 한 교민이 마중나온 가족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인천공항/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무사귀환 ‘포옹’ 지난 26일 밤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편으로 리비아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한 한 교민이 마중나온 가족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인천공항/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수도 트리폴리 거리
100m마다 탱크 배치
중무장 군인 곳곳서 검문
카메라·휴대전화 등 빼앗아…
밤엔 약탈자들로 득시글”
탈출 교민이 전한 현지 상황

도착 서너 시간 전부터 까치발을 하며 기다리던 가족들은 무사히 돌아온 ‘남편과 아빠’를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리비아에서 일하던 우리 노동자와 교민 235명이 26일 밤 대한항공 특별전세기편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이들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의 철권통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본격화한 지난 17일 이후 악몽 같았던 열흘을 돌아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노동자들은 숙소까지 총알이 날아들었지만 약탈 우려 때문에 밤새 숙소를 지키며 공포에 떨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특별전세기가 1대밖에 없어서 우리만 귀국했지만, 현장에는 귀국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 숙소까지 총알 ‘핑핑’…거리엔 주검 즐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서쪽 카다피 궁 부근에서 주택 건설 노동자로 일한 최국진(61)씨는 “21일 밤 9시(현지시각)부터 총격이 시작됐다”며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으로 숙소 바로 앞까지 총알이 날아왔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리비아 체류 3년째인 최씨는 “총격이 뜸해진 틈을 타 한국인 20여명과 방글라데시인 400여명이 100m 떨어진 지하 건물까지 뛰어가 대피했다”며 “다음날인 22일 오전부터는 그나마 안전하다는 마무라 지역으로 이동해 머물렀다”고 전했다. 그는 “트리폴리에 머물 때에는 약탈자들이 득실거려 우리 노동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불침번을 서느라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실제 리비아인들이 숙소로 침입해 쫓아낸 적도 있다”며 “자위야 지역에 있는 공사현장은 약탈자들에게 완전히 털려서 폐허가 됐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동자와 교민들이 귀국을 위해 공항까지 가는 길도 처참하고 삼엄했다고 한다. 건설회사 중간간부인 김진곤(43)씨는 “마무라에서 트리폴리 공항까지 평소 20분 거리인데 6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검문을 12차례나 당했다”며 “팬티 속까지 검문당하고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 외장하드 등 값이 나가는 물건은 빼앗겼다”고 말했다. 김씨는 “트리폴리 도심에 들어서니 100m 간격으로 탱크가 늘어서 있고 스나이퍼(저격수)들이 우리를 겨누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권용우(47)씨도 “트리폴리에서는 밤이면 약탈자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며 불을 지르고 총을 쏜다”며 “카다피 궁 앞 건설현장에서 주검 6구가 뒹구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건설회사 간부인 이상동(48)씨는 “카다피가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반군에 대항해 싸우라’는 연설을 한 뒤 친카다피 시위대들이 총과 폭죽으로 무장한 뒤 차를 나눠타고 트리폴리 쪽으로 이동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씨는 “하지만 내가 하던 공사의 발주처인 도시개발청의 한 리비아인은 ‘정권교체는 시간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 다시 만난 가족들, 공항은 눈물바다 “참 욕 많이 보셨어요.” “어, 자네도 고생 많았지?” 트리폴리 잔주리 지역에서 일했던 구수일(53)씨 등 10여명의 노동자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담배를 꺼내물며 서로를 격려했다. 마중 나온 회사 간부들은 환영의 박수를 치고 즉석에서 ‘격려금’ 봉투를 전달하기도 했다.

무사히 다시 만난 가족들은 공항에서 눈물바다를 이뤘다. “앗, 아빠다, 아빠!” 동명기술공단 감리단장인 아버지 손창수씨가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딸 윤진씨는 울먹이듯 외쳤다. 고등학교 교사인 윤진씨는 “학생들이 ‘선생님 괜찮냐’며 걱정을 많이 해줬다”고 말했다. 아내 이혜승(53)씨도 “일주일 전부터 통화하려 해도 신호가 가지 않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공항에 나오기 전에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한솥 끓여놓고 왔다”고 말했다.

아들을 마중나온 최용환(58)씨는 “미국 같은 나라는 일이 터지자마자 자국민들을 바로 철수시켰는데, 우리 정부도 좀더 신속하게 조처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을 졸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천공항/손준현 박태우 이유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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