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성폭력특별법 제정·사회적 환기 등 큰 구실
6만7천건 사례 엮어 피해자 지침서 내놔
“친고죄 폐지 등 사법제도 개선 이뤄져야”
6만7천건 사례 엮어 피해자 지침서 내놔
“친고죄 폐지 등 사법제도 개선 이뤄져야”
창립 20돌 맞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함께한 대담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반성폭력 운동단체이자 피해 지원·상담기관인 한국성폭력상담소가 13일로 창립 20돌을 맞았다. 지금까지 기록된 상담 건수만 6만7000여건, 이곳을 거친 상근활동가는 100명을 훌쩍 넘는다.
초대 최영애 소장(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장정순·이미경 전 소장에 이어 2009년부터 상담소를 이끌어온 이윤상(41·사진) 소장은 “통념 뒤집기가 왜 이리 힘든가”라고 되물었다. “법·제도는 발전했지만 성폭력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고통’이고 가해자에겐 ‘실수’이며 딸 키우는 부모에겐 ‘잠재적 재앙’으로 여겨질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1991년 문을 연 상담소는 한국 사회 반성폭력운동의 역사 그 자체다. 우선 94년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견인차 구실을 했다. 상담소가 맡은 대표적 사건으로는 21년 전 9살 때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아저씨를 살해한 91년의 김○○ 사건, 13년 전 9살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의붓아버지로부터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입고 남자친구와 함께 가해자를 살해한 92년의 김△△·김□□ 사건, 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2004년 밀양 집단성폭력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이 사건들은 어린이·친족·강단·집단 등 대표적인 우리 사회 성폭력 문제의 유형과 그 심각성을 드러내고 지원 체계의 부재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 소장은 “성폭력은 여전히 피해자 본인만 처벌을 요구할 수 있는 친고죄라서 은폐되는 사례가 많으므로 이를 근본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며 “법원에서의 판결은 여전히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보다 여성의 정조를 중요하게 따져 왜 반항하지 않았는지 등을 캐물으며 협소한 부분만 피해로 인정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회인식을 바꾸자는 취지로 상담소는 그간 운동사를 담은 <성폭력 뒤집기>(이매진)와 피해자들을 위한 지침서 <보통의 경험>(이매진)을 준비했다. “성폭력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 만연한 문제이며, 고통의 경험이 아닌 ‘보통의 경험’입니다.” 지침서에는 피해자가 존엄을 회복하는 방법, 피해자 리더십, 가해자 대면법, 사법제도 등 다양하고 꼭 필요한 정보들을 담아냈다.
상담소는 1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20돌 기념행사를 열고 ‘앙코르 발기인대회’도 진행한다. 앞으로 20년을 함께할 200명의 발기인들이 모이는 ‘제2의 창립식’이다. (02)338-2890.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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