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엄마가 된 지 4년째. 하지만 난 아직도 미숙한 엄마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일 핑계라도 댔지만, 일을 잠시 쉬고 있는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이 나라에서 ‘미숙한 엄마’란 지탄의 대상이 된다. “어떻게, 애 엄마가 돼서는…(이것도 못하냐)”는 식의 족쇄를 항상 달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정말 강한 것 같다.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일단, 화려했던 싱글 생활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 정작 자신의 옷을 사는 데는 몇천원에도 벌벌 떨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한달에 40~50만원 하는 영어 학원이며, 유치원은 물론이고 수십만원짜리 각종 전집류로 아이 방을 채워준다.
그에 비하면 난 어떤가. 전집들로 아이의 방을 채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보력도 형편없다. 또, 아이에게 좋은 옷을 사준다면, 나에게도 좋은 옷을 선물한다. 이런 나를 향해 나 스스로는 물론 주위에서는 ‘미숙한 엄마’라는 죄의식을 갖게 한다.
아이에 앞서 피곤해 쓰러져 잠드는 건 감히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내 상태나 기분과는 상관없이 엄마인 나는 항상 최고의 감정통제자가 되어 자애로운 성품만을 보여야 한다. 항상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엄마는 바로 천하무적의 태권브이이며, 인내의 상징이다.
하지만 엄마도 천하무적 이전에 사람이다.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인정받기는 어려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가진 사람이다. 애가 어느 정도 크기까지는 맘 편하게 화장실 한번 다녀오는 일도 어렵고(아무리 강도 높은 직장도 화장실은 편히 갈 자유가 있다!), 애가 좀 크면 아이의 사회 생활을 배려해 주위 또래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들과의 네트워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회사 내 웬만한 인간 관계보다 어렵다!). 게다가 아침 저녁으로 뒤바뀌는 상사의 기분보다 더 자주 바뀌는 아이의 상태에도 맞춰야 하며, 학원이나 어린이집 등을 비교 분석하는 시장 조사 기능도 항상 갖춰야 한다. 심지어 자체 교육 프로그램은 항상 가동해야하고 업데이트까지 필수적이다. 뿐인가. 요리에, 청소에, 빨래에, 남편 돌보기까지 따지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는 일들이다.
물론 엄마는 강하다. 그 강인함은 누가 강요해서라기보단 한없는 사랑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미숙한 엄마인 나조차 엄마라는 이름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엄마’란 이름으로 엄마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하는 듯하다. 그 짊을 온전히 다 감당해내지 못하면 ‘나쁜 엄마’라는 주홍글씨를 잘도 새겨댄다. 고백하노니, 엄마는 강하지만 엄마도 사람이다. 엄마들의 짐을 나눠져줄 가족의 도움과, 사회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한 까닭이다.
백선아 jjsun6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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