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보호위 회의록 공개…‘향정신성 의약품’ 이유
위원 성향따라 음란·염세성 등 자의적 심의 심각
위원 성향따라 음란·염세성 등 자의적 심의 심각
“어떡하죠 어떡해요 다시 또 사랑이 커져버리면/ 감기약이 많이 독했으면 싶어요/ 술취한 것처럼 아주 깊은 잠이 들어야/ 새벽에 말도 없이 찾아온 헤어짐의 기억이/ 나쁜 꿈일 뿐이라고 날 속일 수 있으니….”
지난 2월, 가수 지아의 노래 ‘감기 때문에’가 음반심의위원회(음심위) 심의에 올랐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여자의 심정을 담고 있지만 노랫말에 ‘유해약물’인 ‘술’이란 단어가 들어 있어 문제가 됐다. 음심위원들은 그래도 “술을 마신 게 아니다”라며 무해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청소년 유해물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청소년보호위원회(청보위) 심의 과정에서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이번에는 ‘감기약’이 문제였다. 한 위원은 “감기약이 향정신성 의약품 아니냐”며 “안건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결국 이 노래는 술과 감기약이 둘 다 문제가 돼, 찬성 8 반대 1로 ‘19금’ 딱지가 붙었다.
2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김유정·김재윤 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에서 제출받은 음심위와 청보위의 회의록을 보면, 음란성뿐만 아니라 언어왜곡이나 염세적 관념 등의 가사까지 자의적으로 재단해 유해물 여부를 심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심위와 청보위의 회의록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통’이 부른 ‘거지’는 “사람들 햄버거를 처먹으며 나를 비웃어/ 미간을 찌푸리지마 동정은 됐고” 등의 가사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꼬집는 노래인데, 청보위원들은 “신세를 너무 염세적으로 본다”는 식의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청보위는 결국 “내용상 기준에 명확히 걸리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에도 ‘비속어’ 관련 유해 판정을 내렸다.
‘남녀공학’이 부른 ‘삐리뽐 빼리뽐’은 “삐리뽐/ 빼리뽐”이라는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단어와 “할로(Halo) 인사부터 할게 별로 맘에 안 들어도/ 나로 말할 것 같음 쉬운 남잔 개나 줘버려”라는 부분이 문제였다. 청보위원들은 “가사가 매우 엉망이고 난해하다” “우리 위원회가 건전한 노래가사로 변화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남녀공학’ 가수들이 어린데, 애들이 나와서 ‘개나 줘버려’라고 하는 상황”이라는 등의 의견을 내놨다. 이 노래도 유해 판정(유해 8, 무해 2)을 받았다.
유해물 여부를 1차적으로 심의하는 음심위 구성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음심위원은 ‘청소년 보호 의식이 확고한 사람’ 중에서 여성부 장관이 위촉하도록 돼 있다. 특히 음심위 강인중 위원장은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를 “악마의 화신”으로 비유하고 “문화예술 행위는 반드시 성경의 잣대로 심판된다”고 주장하는 칼럼을 써, 누리꾼들 사이에서 개신교에 경도된 세계관을 드러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유정 의원은 “두 위원회가 자의적인 잣대로 들쭉날쭉한 심의를 하는데다, 독재정권 시절의 검열이나 다름없는 심의를 하고 있다”며 “현재의 심의 절차와 기준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진 서정민 기자 frog@hani.co.kr
아래는 청소년보호위원회 회의록 주요 내용이다.
아래는 청소년보호위원회 회의록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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