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친정 엄마가 오시는 날이면 냉장고 속 찬밥 그릇을 숨기기에 바쁘다. 급한 나머지 냉동실에 그릇째 집어 넣지만 대개 금방 들통나기 마련. 딸네에 오는 즉시 냉장고를 열어 젖히고 찬밥 수색에 나서는 건 친정 엄마들의 행동수칙이던가? 행여 따뜻한 밥 지어 엄마에게 드리고 나는 찬밥을 먹을까 걱정이시다. 아이들이 언제 밥을 찾을지 몰라 냉장고에 찬밥 두 그릇 놓아두는 내가 언제나 불만스런 울엄마, 결국 그 찬밥을 내가 먹게 되는 법이 많다는 걸 아신다.
우리 엄마 세대에게 따뜻한 밥과 찬밥은 의미가 사뭇 달랐다. 오죽하면 ‘찬밥 신세’란 말이 생겨났을까? 고슬고슬하고 고소한 냄새가 솔솔 피어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은 당연하게도 하늘 같은 남편과 자식들 몫이다. 전날, 늦게 돌아오는 남편과 자식을 기다리던 밥은 하룻 밤 새 찬밥으로 강등되어진 채 아내이자 엄마의 몫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어디 찬밥 뿐인가? 다른 남은 음식 처리도 대개는 엄마 겸 아내 몫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없는 점심 식탁에 홀로 앉아 냉장고 속 남은 반찬 일제 소탕 작전에 나설 때, 문득 세상 모든 엄마들의 얼굴엔 자못 비장함마저 흐른다. 나도 그렇다. 남은 호박나물이며 생선전이며 싹쓸이 한 데 모아 참기름 듬뿍치고, 고추장 큰 한 숟갈에 쓱쓱 비벼 입이 미어져라 한입 넣을 때, 나는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과 똑 닮았다. 냉장고 속에서 거의 일주일 뒹굴었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찬밥을 물에 말고, 남은 열무김치를 유일한 반찬 삼아 쓱싹 먹어 치울 때는 정말이지 나는 제법 엄마 같다. 내 열렬한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자기 비하’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삶의 주권을 회복하라는 멋진 수사와 함께 혼자서도 우아하게 온갖 반찬을 격조있는 접시에 담아 먹어야 한다고 외친다. 백번 공감하고 말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이를 다른 그 누가 존중해 주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한편, 대한민국 엄마들의 ‘내공’은 그들이 먹어치운 찬밥 그릇 숫자에 비례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대접하는 본능적인 엄마 감각, 이는 대한민국 엄마들이 가진 뜨거운 사랑의 힘이다. 자발적 ‘찬밥신세’를 선택한 그들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섬김과 자발적 불평등을 높이 평가하는 세상, 모든 찬밥 먹는 엄마들의 꿈이 아닐까? 박어진/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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