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숙경 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그만하고 일어나자고! 이미 엎어진 물인데 어떡해!”
지난 18일 오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감장 앞. 복도에서 문숙경 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 원장이 직원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양평원 직원들은 고개를 푹 숙였고, 피감기관인 여성가족부 직원들도 이 흔치 않은 광경을 숨죽여 바라봤다.
문 원장이 격분한 건 국회 여성위 소속 김유정 민주당 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를 확인하고 나서였다. 보도자료가 나오고 양평원 직원들 사이에 책임 소재를 놓고 약간의 실랑이가 있자 문 원장이 “이미 엎어진 물”이라며 “식사나 하러 가자”며 버럭 화를 낸 것이다.
김 의원은 이날 자료에서 문 원장의 선임과 연임 과정에서 외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문 원장이 대선 당시 한나라당 경북도당 부위원장을 맡아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왔고,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다 낙선한 뒤 자리를 받은 ‘낙하산 보은인사’라는 것이다. 보도자료가 나오자마자, 여성부와 양평원 직원들은 이를 현장에서 입수해 훑어봤고, 긴급하게 의견을 나눴다.
김 의원이 양평원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08년 양평원 원장 선임 면접심사에서 김아무개 후보는 문숙경 후보보다 44점이나 면접점수가 높았지만 차점자인 문 후보가 원장으로 낙점을 받았다. 당시 여성계나 후보자 심사위원회 안에서조차 그의 ‘정치 경력’이 양성평등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기관의 원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문 원장이 취임한 뒤 구성한 이사진들 또한 친정부 인사들이 많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양평원 이사장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여성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구명숙 숙명여대 국어국문과 교수다. 이사인 구혜영 한양사이버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광진구청장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또 다른 이사인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여성부 장관 추천 몫으로 이사가 됐는데, 뉴라이트 계열 학자로 꼽히며, 2010년 2월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이에 김 의원은 “최근 연임 심사 때 원장 후보자 심사위원 8명 중 6명은 문숙경 원장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로 구성됐다”며 “문숙경 원장의 연임은 심사위원회가 구성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감을 앞두고 리더십과 연임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문 원장은 자료를 요구했던 국회의원들을 찾아 적극적인 해명활동을 펼쳤다. “양평원이 방만 경영을 하고 있다”는 한 한나라당 의원의 지적에는, 의원실로 찾아가 해명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하게 과잉방어한 것으로 알려져 국회 안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양평원은 성인지력을 높이고 말 그대로 ‘성평등’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정부의 정치적인 입김이 미칠 이유가 전혀 없는 조직이다. 양평원이 ‘여성 정치인들을 위한 대기실’ 정도로 기능하게 된다면 ‘여성인력 고위직 진출’이니 ‘유리천장 깨기’니 ‘양성평등’이니 하는 목적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감장에서 문숙경 원장과 양평원 직원들의 모습을 지켜본 국회의 한 관계자는 “국정감사는 국민의 입장에서 지적하고, 문제가 있었다면 질책받고 시정을 약속하는 자리인데, 어떤 지적에도 무조건 억울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니 혹여 여성 전체의 리더십 문제로 비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양평원은 성인지력을 높이고 말 그대로 ‘성평등’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정부의 정치적인 입김이 미칠 이유가 전혀 없는 조직이다. 양평원이 ‘여성 정치인들을 위한 대기실’ 정도로 기능하게 된다면 ‘여성인력 고위직 진출’이니 ‘유리천장 깨기’니 ‘양성평등’이니 하는 목적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감장에서 문숙경 원장과 양평원 직원들의 모습을 지켜본 국회의 한 관계자는 “국정감사는 국민의 입장에서 지적하고, 문제가 있었다면 질책받고 시정을 약속하는 자리인데, 어떤 지적에도 무조건 억울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니 혹여 여성 전체의 리더십 문제로 비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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