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피해자 보호 놓고 여성부 “법적근거 없다” 뒷짐
위안부 문제에도 소극적…“여성인권 외면” 불만 터져
위안부 문제에도 소극적…“여성인권 외면” 불만 터져
여성운동단체들 사이에서 여성가족부의 역할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여성부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념비 건립 등 여성인권 문제를 외면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단체인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지난 5일 성명서를 내 “여성부를 해체하라”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성희롱 피해자 김미영(가명·46)씨가 여성부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자 여성부가 건물주의 요구를 빌미로 철거를 시도하고, 피해자가 장관 면담을 하러 가자 경찰을 불러 쫓아내는 등 여성 인권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지원에 소극적인 데 대해 여성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장관의 입장을 물었지만 여성부는 “복직 등 성희롱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8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문에서 여성 비정규직, 업무 외주화로 겪는 여성들의 불이익과 직장 내 성희롱 구제책 문제에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성희롱 피해 구제책이 부족하니, 정부가 노력하라는 뜻이다.
마침내 지난 14일 현대차의 노사 합의에 따라 원직 복직이 결정돼 김씨는 197일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복직 투쟁을 도운 전국금속노조 활동가 권수정씨는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승인,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 인정과 피해보상 결정, 시민들은 지지와 성원을 보내줬다”며 “여성부는 가해자 특별 예방교육, 재발방지 조처마저 못하는 조직인가”라고 비판했다.
지난 9월 김금래 여성부 장관이 취임할 때, 여성계와 피해자쪽은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다. 전임 백희영 장관에 견줘 오랜 여성계 활동으로 인한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 비서실 여성팀장 출신으로 ‘낙하산’ 논란이 있긴 했지만 취임하자마자 천막 농성중인 김씨를 만나 위로하는 등 전임 장관과는 선을 그은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두어달 뒤 김씨 쪽은 “장관이 피해자를 만나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복직이 어려우니 다른 곳에서 일하면서 피해보상을 받으라’며 굴욕감을 안겨줬다”고 밝혔다. 피해자쪽은 “장관과 함께 찾아왔던 여성부 사람들이 건물을 드나들 때 천막 앞을 지나다니며 때론 경멸하듯 쳐다보고 웃었다”며 “그것이 무엇보다 큰 고통이었다”고 전했다. 성희롱을 드러냈을 때 통상 잇따르는 ‘2차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 1000회 기념비 조성에 대해서도 여성부는 외교적 관례에 어긋날까 좌불안석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문제와 달리,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여성부가 피해자를 지원하고 기념사업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 그러나 여성부 관계자는 “기념사업에 대해 근거가 있긴 하지만 민간의 문제이고, 외교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자중하라는 외교부의 구두 협조 요청이 있었다”며 난감해했다.
한 여성단체 활동가는 “여성부가 성희롱 피해자를 오히려 의심하거나 뒷짐을 지는 식으로 대응해 피해를 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부 고위 관계자는 “김 장관 취임 뒤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려 많은 물밑 협상이 있었는데 차마 드러낼 수 없었고, 일본군 위안부 기념비 건립과 관련해서도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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