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년행진 참가자들.
성폭행 원인을 피해자의 복장에 돌리는 사회문화에 일갈
제2회 ‘잡년행진(슬럿워크)’ 행사 서울 탑골공원서 열려
제2회 ‘잡년행진(슬럿워크)’ 행사 서울 탑골공원서 열려
중복의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28일 오후 4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잡년행진’(슬럿워크)이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 탓에 참여인원은 지난해보다 줄어든 120여명에 그쳤지만 잡년행진 특유의 활기는 여전히 이어졌다.
잡년행진은 지난해 1월 캐나다 토론토의 한 경찰관이 요크대에서 여성안전 강의중 “성폭행 당하지 않으려면 매춘부(slut:슬럿) 같은 옷차림을 피해야 한다”고 한 말에 여성들이 반발해 조직한 집단행동에서 비롯됐다. 잡년행진은 성폭력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 사회적 시선을 비판하며 캐나다에서 출발해 미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7월 첫번째 잡년행진이 열렸다. 고려대 의대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평소 행실이 문란했다‘는 내용의 설문지를 뿌린 것이 탄생의 촉매제가 됐다.
이날 유행과 체형,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복장을 한 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모인 참가자들은 흥겨운 전자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행사를 시작했다. 검은색 속옷과 망사스타킹만 입은 한 여성은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였고, 다른 쪽에선 치마를 입은 한 젊은 남성이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탑골공원에 마련된 무대에 오른 ‘도둑괭이’(30·별명)는 “어느 누구도 성폭행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내가 입은 옷이 ‘예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입었든 벗었든 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통영 살인사건의 경우, 숨진 아이가 ‘먼저 차를 태워달라고 했다’거나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는 내용을 앞장서서 보도한 것은 언론”이라며 “가해자의 본능을 합리화하는 내용의 보도가 이어지면 성범죄가 피해자의 탓이라는 인식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행사를 기획한 ‘칠월’(26·별명)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행사장소를 답사하기 위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처음 공원에 왔을 땐 많은 남성들이 질책하거나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많은 이들이 함께 모이니 같은 곳이 공포의 공간에서 자유의 공간으로 바뀌었다”며 “이처럼 도심을 바꾸고 싶은 바람에 시내 중심지에서 행사를 열었다”고 말했다. 또 “딸에게 항상 ‘일찍 들어와라’, ‘문 단속해라’고 나무라던 엄마가 딸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그런 행사를 꿈꾼다”고 덧붙였다.
행사에 참석한 송현민(23·남)씨는 “헌병으로 근무했는데 지난해 1년동안 성폭력 범죄가 380건이나 발생했다”며 “야한 옷과 여자들의 행실이 문제라면 군대에서는 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소매 없는 티셔츠를 입고 행사에 참여한 박아무개(28)씨는 “행진에 참석하기 위해 경남 진주에서 이곳까지 찾아왔다”며 “(스스로) 뚱뚱하다고 생각하지만 잡년행진의 행사 취지에 맞게 큰 마음을 먹고 노출을 했다”며 웃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엇갈렸다. 행사를 지켜보던 유아무개(75·남)씨는 “의식주 중에서 ‘의’가 제일 앞에 있는 이유는 그만큼 의복에 대한 예절을 지키라는 뜻”이라며 “동방예의지국인데 예절을 지키면서 복장을 입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못마땅해 했다. 반면 김아무개(56·남)씨는 “시대가 변했는데 여성들의 복장이 자율화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탑골공원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청계천을 따라 명동까지 행진한 뒤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인디밴드의 뒷풀이 공연을 함께 즐겼다. 남성 4인조 댄스그룹 <게이시대>, 인디밴드 <무키무키만만수> 등의 흥겨운 음악소리가 도심의 밤하늘을 갈랐다.
글 사진 정환봉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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