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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2050여성살이] “여성들이여, 달빛 거리를 활보하자”

등록 2005-08-02 18:52수정 2005-08-02 18:53

지난달 29일, 내가 일하는 단체의 사무실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다가온 제2회 달빛시위에서 사용할 피켓 준비로 북적거렸다. 뭔가 유쾌하고도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구는 없을까 의견을 나누던 사람들은, 어느새 ‘이건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문구를 하나씩 발견하고는 즐거워했다. ‘밤에 배가 고파도 무서워서 나갈 수가 없다!’, ‘여성보고 뭐라 말고 성폭력 가해자나 처벌해라!’, ‘여성들도 밤길 활보 첫차타고 귀가하자!’ 등등, 경험에 근거한 후련한 구호들은 끝없이 쏟아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열린 달빛시위는 희대의 살인범 유영철 사건이 불거지고 난 뒤 여성들의 안전한 밤길을 보장하라고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심을 조장하는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태도, 그리고 여성들의 짧은 옷이나 늦은 귀가를 탓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분노해 연 행사다. 많은 여성단체들이 함께 기획하기도 했지만, 어떤 시위보다도 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행진에 참여하거나 홍보 전단을 받아가는 등, 시민들의 호응이 높았던 행사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여성들 역시 마음속에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한 메시지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올해의 달빛시위는 전국 19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서로 다른 공간, 그러나 같은 시간에 같은 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들을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경험인지! 또 하나의 짜릿한 경험은 이 자리에서 쏟아진 여성들의 신나는 무용담이었다.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은 여성들은 늦은 밤길에서, 그리고 지하철과 버스에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키려고 어떠한 기지를 발휘했는지 이야기했고, 그에 이어졌던 짧은 호신 강의는 여성들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나누면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이미 여성들에게는 단단한 머리, 팔꿈치, 무릎, 손톱 등 효과적이고도 위협적인 무기들이 있다는 것, 밤길에서 누가 시비를 걸어오면 몸을 움츠리며 ‘여성스러운’ 비명을 지를 것이 아니라 어깨를 펴고 ‘으르렁’거리는 거친 소리로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보여주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내심을 발휘하지 말고 그냥 할 말을 하라는 것.

속이 후련해지는 여러 가지 사례와 노하우들을 들으면서, 예전에 “하이힐을 신고 나간 날 밤길에서 누가 쫓아오면 어떻게 도망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후배에게 “왜 도망갈 생각부터 하냐, 하이힐 벗어서 성추행범을 가격해버리겠다고 생각해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났다. 달빛시위가 일깨우는 것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경각심, 법과 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자신 안의 힘이다. 그 힘이 여성들 모두에게 되살아났을 때쯤에는 ‘달빛시위’가 아니라 밤길을 누비는 여성들의 ‘달빛축제’가 벌어지지 않을까?

조지혜/언니네트워크 대표 zoze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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