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사라지고 있다
홍살문에 목을 매 사라지든
정신병동에서 숨죽이며 사라지든
실종으로 사라지든
살인으로 사라지든
유사 이래로 여자들의 사라짐은 계속되고 있다
무명씨로 살았던 여자들
그 존재는 끊임없이 익명화된다
이 프로젝트는 더 이상 여자들이
사라지지 않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사라지는 여자들’ 사이트에서
홍살문에 목을 매 사라지든
정신병동에서 숨죽이며 사라지든
실종으로 사라지든
살인으로 사라지든
유사 이래로 여자들의 사라짐은 계속되고 있다
무명씨로 살았던 여자들
그 존재는 끊임없이 익명화된다
이 프로젝트는 더 이상 여자들이
사라지지 않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사라지는 여자들’ 사이트에서
페미니즘 미술가집단 ‘입김’
가부장제·폭력 항의 뜻 담아…항일투쟁가·성매매 희생자등
이름 없이 스러진 여성들…사이버 공간서 추모제 열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여자가 죽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무명지에 쓴 혈서와 끊어진 손가락을 일본에 보냈던 남자현, 독립 운동을 하다가 남편이 죽자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고발당한 강주룡, 말 타고 쌍권총 쏘면서 병기조달 책임을 맡았던 항일 사수 김마리아, 연쇄살인범의 손에 죽임을 당한 여성들의 공통점은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근 페미니즘 미술가집단 ‘입김’이 ‘사라진 여자들을 위한 추모 웹사이트’(www.sarajinwomen.org)를 열었다. 여자들만의 초혼제인 셈이다. ‘입김’은 지난 97년 8명( 곽은숙, 김명진, 류준화, 제미란, 정정엽, 우신희, 윤희수, 하인선)의 여성미술가들이 사회에 여성성의 숨결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만든 단체. ‘사라지는 여자들’은 이들의 화두와도 같았다. 회원 우신희씨는 “단체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는 없는지에 대해 토론하곤 했었다”며 추모 웹사이트의 출발을 설명했다. 결정적으로 이들의 작업에 불씨를 당긴 건 화성 연쇄살인사건과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등 유독 여성이 많이 희생된 각종 사건들이었다. “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위축됩니다. 자라면서 밤거리를 다닐 때 조심하라는 충고를 듣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늘 시달립니다. 늘 불안정한 존재로 살다 죽고 나면 여자라는 이유로 이름과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거죠.” 이번 추모 웹사이트 제작 기획을 맡은 정정엽씨는 “사라진 여자들을 발굴하고, 애도의 장을 만들고, 사라지는 여자들에 대한 탐구와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려고 했다”며 기획 취지를 밝혔다. 7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탄생한 이 사이버 추모 공간에서는 남성들의 폭력으로 죽음을 맞은 여자들, 업적이 있는데도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군산 대명동 성매매지역 화재로 숨진 ‘꽃같은 딸’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희생자들, 숙종 28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한 뒤 사회에 대한 항거로 자살한 향랑, 일제시대 파업을 주도한 여성노동자 강주룡, 일제시대 경찰국에 폭탄을 투척한 의열 여장부인 안경신, 조선말 하급 무수리로 개화사상에 눈을 떠 갑신정변에 합세한 뒤 대역죄인으로 죽음을 맞은 고대수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림과 플래시로 누리꾼을 맞는다.
지난달 9일에는 회원들이 수원 나혜석 거리에서 ‘사라진 여자들’의 오픈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아름답고도 섬뜩하게 연출했다. 여자들이 외출할 때 쓰던 장옷을 입고 60센티미터 단상 위에서 30분 가량 꼼짝않고 서있는 추모 퍼포먼스는 진분홍의 장옷 이미지와 맞물려 길가던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때마침 혼령의 눈물인 양 비마저 내려 처연함을 더했다.
여성이 씨족 종친회 종중원으로서 인정 받고, 호주제가 없어진 이 마당에,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밝고 향기로운 이야기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 때에, 왜 이들은 여전히 슬프고 잔혹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천착할까. 정씨는 “여성들의 권익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문제에 예민하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들의 ‘위령제’는 아직까지 여성들이 사회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작품들이 사뭇 무겁고 비장한 느낌을 주지만 이들은 ‘아름답고 즐거운 예술’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단지 사회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2000년 ‘입김’이 기획한 ‘아방궁 종묘점거 프로젝트’가 그랬다. 종묘가 가진 죽음의 상징성과 유교적 엄숙주의를 해체하고 가부장의 이미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는 뜻에서 마련된 이 프로젝트는 ‘놀이로서의 예술’이란 개념에도 불구하고 “종묘를 훼손한다”는 전주 이씨 종친회의 반발에 부딪쳐 결국 좌절됐다. 250여 명의 중년 남성들이 설치물을 뜯어내고 작가들을 위협해 행사를 열 수 없었다. 쏟아지는 전화 욕설에 신변 위협을 느껴 전화번호를 바꾼 회원들도 있었다. 그 뒤 여성 단체와 문예 단체가 힘을 모아 비상대책위를 결성했고, 작가들은 (사)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4년간의 지루한 재판 끝에 결국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가부장과 폭력에 대한 끈질긴 항의는 스스로 ‘사라지는 여자’가 될 수 없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여자들이 사라지고 있다/홍살문에 목을 매 사라지든/정신병동에서 숨죽이며 사라지든/실종으로 사라지든/살인으로 사라지든/유사 이래로 여자들의 사라짐은 계속되고 있다/무명씨로 살았던 여자들/그 존재는 끊임없이 익명화된다/이 프로젝트는 더 이상 여자들이 사라지지 않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추모 사이트 대문에 적힌 글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가부장제·폭력 항의 뜻 담아…항일투쟁가·성매매 희생자등
이름 없이 스러진 여성들…사이버 공간서 추모제 열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여자가 죽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무명지에 쓴 혈서와 끊어진 손가락을 일본에 보냈던 남자현, 독립 운동을 하다가 남편이 죽자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고발당한 강주룡, 말 타고 쌍권총 쏘면서 병기조달 책임을 맡았던 항일 사수 김마리아, 연쇄살인범의 손에 죽임을 당한 여성들의 공통점은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근 페미니즘 미술가집단 ‘입김’이 ‘사라진 여자들을 위한 추모 웹사이트’(www.sarajinwomen.org)를 열었다. 여자들만의 초혼제인 셈이다. ‘입김’은 지난 97년 8명( 곽은숙, 김명진, 류준화, 제미란, 정정엽, 우신희, 윤희수, 하인선)의 여성미술가들이 사회에 여성성의 숨결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만든 단체. ‘사라지는 여자들’은 이들의 화두와도 같았다. 회원 우신희씨는 “단체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는 없는지에 대해 토론하곤 했었다”며 추모 웹사이트의 출발을 설명했다. 결정적으로 이들의 작업에 불씨를 당긴 건 화성 연쇄살인사건과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등 유독 여성이 많이 희생된 각종 사건들이었다. “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위축됩니다. 자라면서 밤거리를 다닐 때 조심하라는 충고를 듣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늘 시달립니다. 늘 불안정한 존재로 살다 죽고 나면 여자라는 이유로 이름과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거죠.” 이번 추모 웹사이트 제작 기획을 맡은 정정엽씨는 “사라진 여자들을 발굴하고, 애도의 장을 만들고, 사라지는 여자들에 대한 탐구와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려고 했다”며 기획 취지를 밝혔다. 7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탄생한 이 사이버 추모 공간에서는 남성들의 폭력으로 죽음을 맞은 여자들, 업적이 있는데도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군산 대명동 성매매지역 화재로 숨진 ‘꽃같은 딸’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희생자들, 숙종 28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한 뒤 사회에 대한 항거로 자살한 향랑, 일제시대 파업을 주도한 여성노동자 강주룡, 일제시대 경찰국에 폭탄을 투척한 의열 여장부인 안경신, 조선말 하급 무수리로 개화사상에 눈을 떠 갑신정변에 합세한 뒤 대역죄인으로 죽음을 맞은 고대수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림과 플래시로 누리꾼을 맞는다.
여자들을 지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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