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본 어느 일일연속극 중 아주 인상 깊은 장면 하나. 시댁 일, 친정 일에 곱배기로 속상한 맏며느리 겸 큰딸이 대낮에 혼자 노래방에 들어 앉아 눈물을 흘리며 마구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노래방에 혼자 갈 수도 있다는 걸. 나도 한번 꼭 해봐야지 속으로만 생각하던 걸 요 며칠 전 행동으로 옮겼다.
냉장고에 남은 나물에다 열무김치까지 몽땅 끄집어 내어 든든히 비벼 먹고 찾아간 동네 노래방. 1만2000원에 방 하나를 지정받고 서비스로 30분을 듬뿍 얹어 받으니, 아이쿠, 1시간30분이라는 강물같이 긴 시간이 두 개의 탬버린과 함께 주어졌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일단 길길이 뛰며 부를 노래 몇 곡을 눌러댄 뒤 발라드 몇 곡으로 호흡을 고를 참이었다. 그 뿐인가. 평소 연습해 보고 싶었던 ‘진도 아리랑’과 ‘비오는 날 수채화’에 ‘화장을 고치고’도 큰 맘 먹고 눌러 본다. 내친 김에 ‘이매진’과 ‘은하철도 999’, ‘내 생애 단 한번만’, 그리고 ‘비가’까지. 장르와 국적을 초월하여 음정, 박자 안 되는 곡들도 꾹꾹 눌러 예약하니 생뚱맞은 나홀로 노래방 콘서트의 막이 올랐다. 1절과 2절 사이 간주곡이 나오는 동안 다른 곡을 예약 할 수 있어 우려했던 로스 타임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1시간 반 동안 단 1분도 앉을 틈 없이 선 채 동동거리며 모든 장르를 종횡무진 섭렵하며 주파했다. 느닷없이 과부하가 걸린 등허리와 무릎은 그날 밤 파스 신세를 져야 했는데…. 웬일일까? 기분은 그렇게 홀가분하고 시원할 수가 없었다.
대개 노래방엔 동료 선후배, 친구들이나 가족 형제들과 어울려 가기 마련이다. 남이 노래하는 거 안 듣고 자기 노래 고르려 노래목록에 코를 박고 있는, ‘매너 꽝’인 사람들이 많다. 그게 싫어 남의 노래에 예의 바르게 박수 치고 집중하다보면 정작 내 노래로는 서너 곡이 고작이다. 내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보다 남 앞에서 실수하지 않을 그런 안전한 곡들만 선곡하게 되는 것도 문제다. 결국 ‘접대용 노래’들로 노래방 콘서트는 끝나고 뭔가 미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기 마련이다.
‘나홀로 노래방’에선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 맘에 들지 않는 타인의 취향에 굳이 의전용 환호와 갈채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 못 불러도 그만이고 안어벙씨 표현대로라면 노래연습 기능 외에 정서순화 기능까지 된다.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악쓰며 노래하고픈 자기 표현 본능,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나이 쉰. 이제야 나는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 모양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전환기의 이름은 ‘갱년기’다.
박어진/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