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신체접촉·성매매 요구 순
가해자 70~80%가 사장·관리자
‘불법체류 신고하겠다’ 협박에
피해사실 신고도 못하고 속앓이
가해자 70~80%가 사장·관리자
‘불법체류 신고하겠다’ 협박에
피해사실 신고도 못하고 속앓이
지지난해 캄보디아에서 온 20대 여성 보파(가명)에게 한국은 ‘꿈의 나라’였다. 경남 지역 한 농장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꿈은 악몽이 됐다. 농장주는 회식 자리를 마련한 뒤, 한국 음식이 낯선 보파에게만 “차에 가 있으라”고 했다. 이윽고 농장주는 보파를 찾아와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보파의 거부로 농장주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농장주는 집요했다. 다음날 새벽 농장주는 보파가 잠든 기숙사까지 찾아 ‘잠자리’를 요구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더는 농장에 머물 수 없게 된 보파는 이주여성들을 위한 쉼터로 옮겨야 했다.
국내 전체 노동자의 1%에 해당하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의 덫 속에서 성폭력이라는 최악의 인권 유린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2012년 집계를 보면, 외국인 취업자 79만1000여명 가운데 여성은 27만4000여명(34.6%)으로 국내 전체 노동자 2500만여명의 1%가 넘는다.
이주민을 위한 인터넷 방송인 <이주민방송>(MNTV)과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 1218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 벌인 실태조사 결과, 조사에 응한 여성 이주노동자 205명 가운데 10.7%가 성폭행·성희롱 피해를 당한 적이 있었다고 28일 밝혔다. 피해 유형(복수응답)을 보면, 성폭행이 47.4%나 됐고 회식 자리에서의 신체 접촉이 31.6%, 성매매를 요구한 경우가 21.1%였다. 가해자(복수응답)는 대부분 사장(80%)이나 관리자(70%)였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 여성노동자의 68.2%는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주노동자의 불안정한 처지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가 드러날 경우 좁은 이주민 사회에서 발붙이기도 어렵다. 가해 남성들은 이런 처지를 적극적으로 악용했다. 피해 여성의 58.3%는 성폭력 피해 이전에 ‘불법체류를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당했으며 ‘월급을 주지 않겠다’는 등 금전적인 협박(16.7%)도 자주 당했다.
사업주들을 신고해도 정당한 처벌로 이어지지 않으리란 불안감도 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대전지법 논산지원은 중국인 종업원 ㅇ(35)씨에 대한 성폭행·감금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사업주 전아무개(43)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전씨가 ㅇ씨를 7차례 성폭행·추행했다고 보고 7년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ㅇ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 이주노동자의 특수한 처지를 수용할 전문 상담·보호기관도 부족하다. 2010년 기준으로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은 5곳에 불과하다. 민간기관은 물론, 가장 활발히 운영되는 고용노동부 위탁 지원기관인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에조차 ‘성폭력’에 대한 상담 지침은 없다.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하는 게 최우선이다. 아울러 돈을 벌기 위해 어렵게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피해를 쉬쉬하기 때문에 미등록 체류자라 해도 일단 피해자임이 확인될 경우엔 고용허가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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