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랑 섹스 하는 거 재미없어?”
“무슨 섭섭한 말이야? ”
“그런데 왜 두 달 째 내 몸에 손 댈 생각을 안 해? ”
“배부른 너를 붙들고 할 수 없잖아. 아기 낳은 후에 다시 하자.”
남편이 행동을 취해주길 기다리다 그의 생각을 묻고 말았다. 쉽지 않았다. 어떤 주제든 비교적 솔직하게 말했지만, 이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그와 성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해 온 건 아니다. 성욕을 느낄 때마다 남편에게 먼저 관계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배가 불러오고 몸이 무거워지니 외모에 대해 비관스런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자주 스킨십을 하던 남편이 이젠 내가 먼저 그의 몸을 만져도 내 몸을 만져주지 않았다. ‘이제 성적 매력이 떨어진건가?’ 부정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대로 넘길 수만 없어 “삽입만이 섹스는 아니”라고 남편의 말을 받아 쳤다. 그러나 남편은 “네 말이 맞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고 맞섰다. ‘괜히 말했나?’ 민망한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사실 임신 중 성생활에 대해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성담론은 대단히 남성 중심적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섹스를 하고 싶을 수도 있고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남성만이 성욕을 느끼는 존재로 이해되고 있으니 말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지은이들은 하나같이 임신 중인 아내가 섹스를 거부하면 남편이 욕구 불만으로 바람을 피울 수 있으니, 임신 9개월 이후를 제외하곤 성관계를 하라고 앵무새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니 성관계를 회피하는 남편을 보며 내가 느끼는 당혹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아마 남편도 나의 질문를 받고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긴, 우리 사회에서 성에 대해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사는 부부가 몇쌍이나 될까.
솔직히 나는 임신 중 성생활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남자들은 자기 감정을 여성에게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답답하다. 꼭 삽입섹스가 아니라도 임신 중의 친밀한 부부의 스킨십은 임신, 출산 후 부부관계의 단절을 막는 좋은 연결고리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와 섹스를 하고 싶다. 그와 완벽한 소통을 하고 싶다. 언제쯤이면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내가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한 쪽 가슴이 아려온다.
이은하/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anti0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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