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박5일 북한 여성삶 둘러보니
결혼·출산 당연, 이혼은 수치…세쌍둥이는 국가적 경사
다양한 탁아소 여성활동 지원
지난 10~14일 평양과 묘향산 등지에서 열린 ‘2005 남북여성통일행사’(이하 남북여성행사). 남쪽 100여 명, 북쪽 300여 명이 참가한, 분단 이후 가장 큰 여성행사지만 “여성이 통일에 기여하자”는 공동합의문을 발표한 것 말곤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잡히지 않아 아쉬움을 줬다. 남과 북 여성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젖힌 건 남북의 공동합의문도, 무표정한 악수도 아니었다. 아이들이었다. 지난 13일, 평양 모란봉 제1중학교를 나올 때였다. 학교 참관 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남쪽 여성들에게 손을 흔들자 눈물 바람이 확, 번지기 시작했다. 남쪽 여성들의 눈물은 금세 북쪽 여성들에게 전염됐다. 창광유치원에서 아이들의 재롱을 보고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웃음, 눈물, 까닭 모를 탄식은 4박5일 내내 일행을 따라다녔다. 북쪽 표현대로라면 ‘어머니 마음’이고, 남쪽에 따르면 ‘배려와 돌봄에 익숙한 여성의 심성’때문이었을 것이다. 남과 북 여성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협곡을 메울 것은 오직 시간인 듯 싶었다. 남쪽 여성들은 잠시나마 북쪽 여성들의 삶과 생각을 알고 이해하게 된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조명애는 없다= “조명애가 누구입니까?” 북쪽 여성 그 누구도 단박에 조명애를 알지 못했다. “남쪽에서 인기 많은 북쪽 무용수”라는 설명을 덧붙이면 그제야 “아~”하는 이가 몇 있었을 뿐이다. 실지로 북쪽에서 선망하는 여성은 조명애가 아니었다. 그들이 첫 손에 꼽는 닮고 싶은 여성들로는 “아이들을 많이 기른 ‘모성 영웅’”이 있었고, 북쪽 여성의 기상을 전 세계에 알린 “유도선수 계순희”가 있었고, “일 솜씨가 좋은 여성들에게 붙이는 별명인 ‘준마 처녀’”가 있었다. 이상적인 여성상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났다. 여성은 대개 “여자는 세찬 데가 있어야 한다”고 한 반면, 남성은 “여자는 숭이 세면(기가 세면) 안 되고, 마음이 고와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은 여성의 임무= 나이가 차면 ‘준마 처녀’도 시집을 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개인은 가정의 세포이고, 가정은 또 사회의 세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도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은 “이기적인 사람”이란 놀림을 받았다. 조선민주여성동맹 박순희 위원장을 비롯한 북쪽 여성들은 특히 어머니 역할을 여러 번 강조했다. 33명의 고아들을 데려다 길러 유명해진 ‘모성 영웅’ 서혜숙씨는 “시집 가서 아이 잘 낳고, 자식 많이 낳는 게 여자의 본분”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혼과 출산은 남북여성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숙제’인 셈이었다. 반면, 이혼은 남쪽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 김경옥 여맹 부위원장은 “이혼을 수치로 생각하며 부모도 승인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저출산 고령화 위기 경계= 여성전문병원인 평양 산원 관계자는 “북에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면, 여맹의 한 관계자는 “아이를 한 명에서 두 명 정도 낳으려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북쪽의 출산율 추이를 정확하게 알 길을 없었지만 아이를 적게 낳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북쪽 여성들이 “아이를 1~2명 낳는 것은 국가발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국가에서 아이들의 교육비를 부담하는 의무교육 기간이 11년(유치원 1년, 소학교 4년, 중학교 6년)이나 되는데, 아이를 안 낳는 것은 이기심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이상적인 아이의 수는 3~4명. 한 20대 북쪽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으면 고령화, 인구 고갈상태에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해 그 곳 역시 고령화 위기를 경계하고 있음을 전했다.
출산과 육아, 사회의 몫= 평균 초산 연령은 2003년 남쪽 통계청이 28살이라고 보고한 것보다 다소 낮아보였다. 여성전문병원인 평양산원의 신예수 고려부인과 부원장은 “보통 24~26살 때 첫 아이를 낳는다”고 일러주었다. 특히 세쌍둥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비교적 높아 세쌍둥이를 낳을 때 헬기나 비행기가 산모를 병원까지 데려오는 ‘특혜’를 준다고 했다. 세쌍둥이가 태어나면 “국가적 경사”로 인정하는 한편, 옷감과 영양식품, 금반지 등이 주어지며 양육비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탁아소는 일탁아소(일탁), 주탁아소(주탁), 월탁아소(월탁)가 분리돼 있다. 800여 명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평양 창광유치원(주탁)의 교원은 150여명. 류진숙 원장은 “교원은 3년제 사범교육을 받은 교원대 졸업자들로, 8시간씩 3교대로 일한다”며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보장하려고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평양/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다양한 탁아소 여성활동 지원
북쪽 여성들 역시 남쪽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훌륭한 어머니가 되고, 직장에서는 성실한 노동자로 일해야 하는 이중의 짐을 지고 있었다. 사진은 평양 수예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북쪽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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