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는 이성에 대한 10대의 호기심을 용납하지 않았다. 지금보다 제재가 훨씬 심했다. 여고생들이 감성을 발산할 길이라곤 스타를 좋아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나 역시 숱한 ‘마음의 우상’을 갈아치워가며 불모의 사춘기를 견뎠다. 금기의 벽을 탁 무너뜨리고 ‘진짜배기’ 이성을 만날 용기가 없었기에 그렇게라도 여드름처럼 분출하는 첫 욕정(?)을 다스려야 했다.
그때의 습성이 남아설까. 연애, 결혼 다 해보고 아이 키우는 지금도 때때로 멋진 스타들을 보면 홀딱 빠지곤 한다. 한동안 뜸했던 ‘팬질’을 얼마전 다시 시작했다. 대상은 스무살 축구 선수 박주영. 내가 이렇게 말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야유한다. 마흔을 눈앞에 둔 여편네가 나이도 더블스코어차 나는 ‘영계’에 코빠뜨려 가지고, 무슨 짓이냐고. 뭐 나도 무지 ‘뻘쭘’하긴 하지만 아직 여드름도 채 가시지 않은 이 청년이 창조적으로 축구장을 누비다 기회만 생겼다 하면 한번에 골로 연결시키는 걸 볼 때마다 정신없이 ‘엔돌핀’이 솟는 걸 어쩌랴. 더구나 온 세상이 유혹 천지인 나이일 텐데도 골 세레모니 때만 되면 축구장에 무릎꿇고 하느님을 찾는 일편단심에는 교회 근처에도 안가는 나지만 콧날이 시큰하다. 이런 ‘일탈 아닌 일탈’(?)이 나만의 증상은 아니리라. 내 친구 하나는 드라마를 보다가 남편으로부터 ‘한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한다.
“모모씨 나오는 드라마에 넋이 빠져 밥도 안하고 있었더니 남편이 양단간 결단을 내리라고 하더라. 자기를 택하던지, 모모씨를 택하던지.”
우리나라 남성 스타 보겠다고 군대가는 길목까지 찾아와 울고불고 하는 일본 아줌마들, “수출 늘어나겠구나” 싶기보다 살짝 꼴불견스럽기도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줌마’들이 멋진 남자를 찾아 밖으로(?) 도는 데는 ‘정상 참작’의 사유도 충분해 보인다. 10대 때는 규율에, 결혼하고 나서는 남성에게만 성의 자유를 부여하는 가부장제 때문에 진짜 사랑할 만한 남성상조차 빼앗겨버렸던 게 아줌마들이다. ‘사랑하고픈 마음’은 그렁그렁한데 감성 곡선이 넝쿨을 뻗기도 전에 이런저런 억압들에 맞닥뜨리니 어쩌겠는가. 정신건강을 위해 대리 해소라도 해야지. 원래 누르는 힘이 강할수록 더 치받아 오르는 게 에너지 법칙이 아닌가.
축구스타 박주영을 좋아하고 난 뒤 내 생활은 훨씬 풍요로워졌다. 축구라면 차범근 밖에 몰랐는데 축구장에 나가 제법 전술을 읽어가며 관람할 정도까지 됐다. 인생에 즐김의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 박주영을 바라보는 마음은 엄마 마음과 비슷하다. 잘할 땐 좋아하다 조금만 부진하면 ‘씹어대기’ 시작하는 냄비팬이 아니라 잘할 때도 못할 때도 즐겁게 그의 성장을 지켜봐 주고 싶다. 아줌마들의 팬심이래야 고작 이런 수준이다.
그러니 이 자리를 빌어 ‘연예인 광팬’이 된 내 친구 남편에게 부탁 드리고 싶다. 조금만 관대하게 친구의 ‘정신적 방황’(?)을 지켜봐 달라고. 그는 지금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늦깎이 홍역을 치르고 있는 중이라고. 손윤정 프리랜서 작가 soksaram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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