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독립운동가 89살 오희옥 지사
“14살 때 중국에서 일본군에 맞서
가두선전도 하고 방송도 해”
할아버지·아버지 이어 독립운동
“광복 됐지만 나라 두 동강…평화통일 돼야”
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독립을 향한 여성영웅들의 행진’ 특별기획전 개막 행사를 마친 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오른쪽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안내글을 보고 있다. 오 지사는 정부 포상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 248명 가운데 지금껏 생존한 4인 중 한명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국가보훈처가 지금껏 포상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248명이다. 그러나 보통사람이 기억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 한명뿐이다. 248명 가운데 지금도 살아 있는 이는 4명.
그 4명에 속한 오희옥(89) 지사가 광복 70돌을 사흘 앞둔 12일 노구를 이끌고 마이크 앞에 섰다.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최로 서울 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야외전시장에서 12일부터 진행되는 ‘독립을 향한 여성영웅들의 행진’ 특별기획전 개막 기념 기자회견에서다.
“후방에선 일본군의 나쁜 행동을 가두선전 하고 중국 중경(충칭)에 가서는 방송도 했다.” 당시 십대 중반의 어린 소녀였던 오 지사가 수행한 독립운동은 심리전이었던 셈이다. 오 지사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만주에서 태어난 오 지사가 1939년 14살의 나이로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일본군의 정보를 모으고 일본군 내 조선인 사병 탈출에 기여했다는 공로다.
오 지사의 집안은 3대가 내리 독립운동을 했다. 할아버지 오인수 선생은 경기 용인의 의병장이었다. 아버지 오광선 장군은 봉오동전투 등 중국 각지에서 무장독립투쟁에 참여했다. 이런 가풍 때문에 오 지사는 독립운동을 당연한 임무로 여겼다. “그땐 어른들 따라서 응당 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 나이가 들면 광복군에 지원해 나라 찾는 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라 없는 설움이 사무쳤다. 중국 애들이 우리를 ‘고려노예’라거나 망국노(나라 없는 노예)라고 놀려대면 싸우기도 했다.”
오 지사의 어머니와 언니도 독립운동을 했다. 오 지사의 어머니는 무장투쟁에 나선 독립운동가들을 먹이느라 한끼에 12가마의 밥을 짓고, 일본군에 쫓기던 독립군을 숨겨주기도 했다. 어머니의 독립운동은 사후에야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 오 지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이 지난 1995년에야 훈장을 받으셨던 게 아직도 가슴에 맺힌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의병 활동을 한 경기도 용인 원삼면엔 3대가 항일운동을 했다는 비석이 있다.
이날 오 지사는 다른 3명의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민영주(92)·박기은(89)·유순희(90) 지사의 손도장이 찍힌 ‘다시 보는 대한독립여자선언서’를 받았다. 대한독립여자선언서는 1919년에 김인종·김숙경 등 8명이 발표한 최초의 대한 여성독립선언서다.
“우리가 광복은 했지만 한 나라가 두 동강으로 분리된 게 아주 아쉽다. 평화통일이 돼야 한다.” 오 지사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17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한 기획전은 23일까지 계속된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