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조나단 시손, 최임자씨.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위안부 피해자 기린 조형물 ‘폭력의 흔적’ 들고온 최임자씨·조나단 시손
“광복 70돌을 맞도록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운명처럼, 이 작품도 15년이 넘도록 기구한 수난을 겪어왔습니다.”
아시아 지역 위안부 피해 생존자 53명의 ‘손’을 새긴 조형작품인 ‘폭력의 흔적’을 들고 고국을 방문한 재미동포 최임자(63)씨와 이 작품의 기획자 조너선 시손(64)은 12일 할 말이 무척 많아 보였다.
스위스 출신으로 유엔 국제화해조절기구(IFOR)에서 일하던 시손은 1993년부터 2차 세계대전 동안 아시아에서 자행한 일본의 대인류 범죄 조사 작업을 진행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한 그는 98년 영국 미술가 앤드루 워드와 함께 한국을 비롯해 필리핀, 대만을 찾아 위안부 피해자 53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우리가 특히 ‘손’에 주목한 이유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에 고통스런 과거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사진 찍기를 꺼리는 피해 여성들을 설득해 움켜쥔 손마디를 펴게 해 화선지 위에 목탄으로 그린 다음, 지장을 찍고 날짜를 넣어 육성 녹음까지 했다. 워드는 이 그림 한장 한장을 투명한 플렉시글라스 사이에 넣고 조명을 넣어 병풍처럼 세운 조형물 두 개를 제작해 ‘폭력의 흔적’으로 이름 붙였다.
하지만 애초 유엔 본부에 설치하고자 했던 두 사람의 의도는 지금껏 이뤄지지 못했다. 국제기구에 엄청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는 일본의 보이지 않는 방해 공작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유엔 본부 전시를 하려면 회원국의 후원이 필수조건입니다. 일본 정부가 반대하니 미국 등 주변국들은 눈치를 볼 뿐이고, 정작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 정부마저 관심이 없었어요.” 시손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대신 작품은 99년 5월 네덜란드 헤이그를 시작으로 필리핀 마닐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대만 타이베이 등에서 순회전시하며 일본군의 만행을 알렸다. 최씨와 이 작품의 인연은 2003년 이뤄졌다. 그때 필라델피아에서 비영리단체 국제여성개발원을 운영중이던 그는 시립 중앙도서관에서 두 달간 미국 내 첫 전시를 주관했다.
“95년 베이징에서 처음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가했다가 위안부 문제를 알고 충격을 받았어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두 분을 초청하는 등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미국 시민사회에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해왔어요.”
그 뒤 2004년 작품은 펜실베이니아에서 중국계 미국인이 난징 학살 등을 알리고자 사비를 털어 세운 아시안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위탁 전시했다. 하지만 2006년 박물관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는 바람에 다시 최씨가 운영중인 펜아시안 노인복지원으로 되돌아왔다. “마땅히 전시할 공간이 없어 최근까지 9년째 해체해서 창고에 보관해둬야 했어요. 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죄송한 마음이었죠.”
그러다 지난 1월 뉴헤이븐에서 열린 국제 노인학 콘퍼런스에서 만난 경남도립거창대 김정기 총장의 주선으로 작품은 마침내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새 둥지를 찾게 됐다. 최씨는 “이제라도 한국에서 영구 전시 공간을 찾아서 다행스러울 뿐”이라고 안도했다.
시손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다 해도 위안부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인권에는 국적이 없는 만큼 한·일은 물론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력의 흔적’은 13일부터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공개된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