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두 번째 맞은 추석. 대전 친정에 살고 있는 나는 부천 시댁에 가지 못했다. “몸이 무거운데 어딜 가냐”고 남편이 걱정해서였다. 서울에서 방송 작가로 일하던 지난해 추석에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방송 준비 때문에 시댁에 오래 있지 못했다. 대전에 있는 친정에는 아예 가지도 못했는데 이 일로 남편은 어지간히 가족들에게 시달림을 받았던 것 같다. 결혼 뒤 제일 당혹스러웠던 점이 바로 이것이다. 시댁 식구들은 우리집과 문화가 너무나도 달랐는데, 결혼 전 생각했던 것보다 강도가 훨씬 심해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자녀 중심의 수평적인 가족문화에 익숙해 있던 나로서는 자녀의 도리를 강조하는 문화가 이상해 보였다. 처음 충격을 받았던 일은 결혼하고 처음 맞았던 설날, 남편이 부모님 앞에서 무릎을 끓고 앉아 아버님 말씀을 들었을 때였다. 나는 평소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는데 남편은 무릎을 끓고 앉는 것이 아닌가. 당시 아버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자녀 낳고 부모 공경하며 잘 살라는 이야기 였던 것 같다.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셨다. 보통의 시어머니처럼 우리 시어머니도 나에게 은근히 며느리 노릇을 기대하셨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대놓고 말하길 꺼려하시는 시어머니 덕분에 크게 부딪힌 적은 없지만 중간에서 힘든 남편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 겉으로만 보면 오늘날 며느리는 대변신 중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봐도 예전과는 달라진 며느리들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남성의 전화’ 홈페이지에 가 보면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편들의 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노인 관련 게시판에는 매맞는 시어머니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고부갈등이 사라진 자리에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새로운 시집살이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과 본가 사이의 갈등,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에 대한 책임을 단순히 막강해진 며느리의 입김탓으로만 보는 건 무리다. 여전히 시금치만 봐도 시댁 식구들이 생각나 먹기 싫다는 며느리들이 많지 않은가. 지금도 우리 사회엔 명절증후군이 있고 어떤 이유로든 시가에 가는 게 불편한 며느리들이 있다.
나 역시 ‘문화적 차이’ 때문에 시댁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이런 나 때문에 남편도 괴롭겠지만 나도 남편과 시어머니, 그들 모자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괴롭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내 처지가 서글퍼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고부간의 문제를 ‘요즘엔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까. 세대간 가치관의 충돌이라고 보는 편이 오히려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이은하/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anti0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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