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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 가족
며느리의 추석 탈출 선언
며느리의 추석 탈출 선언
▶ 다시 명절이 돌아옵니다. 이 땅의 모든 며느리들에겐 버라이어티한 ‘시월드’를 압축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시간. 하루 종일 음식 하고, 시집식구들과 친척들 응대하고, 설거지까지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집니다.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여기 한 며느리가 있습니다. 이번 추석, 시집에 가는 대신 자신을 존중해달라며 파업을 선언했습니다. 홀로 베트남으로 떠난다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인터뷰;가족 투고 gajok@hani.co.kr
한민족이 대이동하는 추석 명절이 돌아온다. 친구들은 벌써부터 카톡방에서 명절 때 감당해야 하는 여러 ‘치욕적’ 상황을 시뮬레이션한다. 면역력을 키우는 예방주사랄까. 나 역시 5년 전 결혼 뒤부터 명절 때마다 열심히 예방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이번 추석엔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시집으로 가는 열차표 대신 베트남으로 가는 초저가 항공권을 끊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얘기는 명절 때마다 내가 ‘시월드’에서 겪어야 했던 일들이다.
시어머니 “아이고, 그냥 내가 설거지할란다.”
나 “아니에요, 어머님. 제가 할게요. 쉬세요.”
(설거지하는 중)
남편 “자기야, 내가 할게. 거실에 가 있어.”
나 “어머님 뭐라고 하셔. 내가 할게.”
남편 “뭘 뭐라고 하셔. 우리 엄마 그런 분 아니야. 자기도 고생했잖아. 내가 할게.”
시어머니 “아들, 뭐 하니? 저리 가라. 거실에 가서 배 깎아놓은 거나 먹어라.”
명절에 남편 고무장갑 끼게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전 수십장 부치는 것보다 설거지 서너번이 더 생색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솔선수범했다. 우리 엄마가 생각나서 설거지 정도는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내가 이렇게 착해도 되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명절 후폭풍이 두려운 남편이 서너번째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내 옆에서 얼쩡거릴 때도 쿨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나의 선의를 전의로 바꾸는 어머님의 말, “저리 가라”.
신혼 초, 갈비찜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접시부터 온갖 전을 부치느라 기름에 전 프라이팬까지 온갖 하드코어한 종류의 설거지 거리가 수북이 쌓인 개수대 앞에서 “(며느리 넌 설거지하고) 아들 저리 가”라는 시어머니의 차별적 지시를 받아야 했던 순간 느낀 감정은 서운함이 아니라 굴욕감이었다.
내가 유독 예민한 거 안다. 나 ‘AA형’이다. 극소심하고 쓸데없이 상처 많이 받는다. 남한테 상처받기 싫어서, 상처 주기 전에 비위 맞추는 데 도가 텄다. 책잡히지 않으려고(상처받지 않으려고) 학교에서, 회사에서 늘 최선을 다하다 보니 모범생, 능력자로 인정받게 됐다. 그래서 설거지도 내가 앞장선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을 때 그러듯, 시월드에서도 그랬던 거다. 단, 시월드는 학교나 회사와 다르다. 인정과 칭찬을 바라고 솔선수범했는데 시월드에선 내게 굴욕감을 준다.
서너번째 설거지하는데 와서
남편 얼쩡거려도 쿨하게 거절
나의 선의를 전의로 바꾸는
어머님의 말씀, 저리 가라!! 식모 하겠다고 결혼했나?
서운함보다 굴욕감 앞서니
명절엔 몸보다 맘을 다친다
이번엔 혼자 시간 보낼 테다 시어머니 “넌 왜 이렇게 꺼칠해지니. 고기도 좀 푹푹 먹어야지.” 남편 “괜찮아요. 그런데 이거 맛있다. 이 사람하고 같이 했어요? 이 사람 음식 잘하지?” 시어머니 (질문엔 답도 없이) “이것도 먹어봐. 나이 들수록 몸에 좋은 거 먹어야 돼.” 남편 “잘 먹고 다녀요.” 시어머니 “잘 먹고 다니기는. 밥해 먹을 시간이나 있겠니. 자자, 이것도 먹고.” 딸이었을 땐 명절이 지난 뒤 살이 쪘는데, 며느리가 된 뒤 명절은 다이어트 기간이었다. 명절 밥상만큼 반찬이 멀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명절의 주요리들은 죄다 ‘웃어른’ 앞에 놓여 있기 일쑤다. 내 앞에 놓인 자잘한 나물이나 김치류 위로 팔을 뻗어 굴비나 갈비찜에 젓가락을 꽂는 일은 마치 ‘막돼먹은’ 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내가 다 만든 음식인데도 떳떳하게 갈비 한 대 못 뜯는 명절 밥상에서, AA형인 나는 위축되고 고립되고 밥맛이 떨어진다. 시어머니가 그나마 나와 가깝게 놓여 있던 반찬까지 재배치하고 나면, 쌀밥이나마 배를 좀 채워볼까 싶었던 마음마저 달아난다. 누가 봐도 남편은 거리낌없이 식사를 하고 그 옆에 주눅들어 앉은 나는 밥그릇만 퍼대고 있는 걸 알 텐데, 그래서 반찬 공수가 필요한 이는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라는 것을 알 텐데,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반찬을 나르느라 여념이 없다. 이것도 저것도 죄다 아들 먹으라고 아들 앞으로 옮겨오시는 걸 보면, 남편과 나 사이엔 어쩔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느낀다. “얘 밥 좀 더 갖다 줘라.” 나는 아직 반 공기도 못 먹었는데, 밥 한 그릇을 그새 다 비운 남편을 위해 밥을 뜨러 일어나야 하는 게 나의 명절적 소셜 포지션임을 나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남편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나 “뭘?” 남편 “내가 모를 줄 알아? 왜 집에만 갔다 오면 짜증이야?” 나 “내가 언제? 뭘?” 남편 “어우 됐다. 그만하자. 나도 자기 눈치 보느라 진짜 힘들다는 것만 알아둬.” 나 “눈치? 무슨 눈치를 얼마나 봤다고 그래?” 남편 “내가 자기 눈치 보니까 엄마가 어쩔 줄 몰라 하시잖아. 꼭 그렇게 해야겠어? 좀 살갑게 하면 안 돼?” 나의 진짜 명절 증후군은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다. 설거지하는 것도 안 힘들고, 음식 하는 것도 안 힘들다. 하지만 명절 내내 여전히 그냥 ‘남의 집’에 불과한 시집과 여전히 그냥 ‘남’에 불과한 시집 식구들에게 당한 자존감의 훼손은 명절이 끝난 뒤에도 꽤 오래간다. 설거지와 반찬 등에 얽힌 시월드의 여러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들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치사하고 구차한 일이다. 그래서 꼭 이상한 트집을 잡아 남편에게 화풀이를 한다. 남편과 차분히 얘기를 해보려 했다. 나 “짜증 내서 미안. 내가 괜한 트집 잡았어. 인정해.” 남편 “흠… 나도 미안해.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았을 텐데 이해해주지 못해서.” 나 “근데, 자기는 내가 뭐 때문에 힘든지는 알아?” 남편 “일이 많아서 그랬겠지. 음식 하고 설거지하느라. 우리 부모님 눈치도 봐야 했고.” 나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냐. 어머님은 왜 그렇게 날 함부로 대하실까? 정말 이해가 안 가.” 남편 “좋게 생각해. 엄마도 나름 며느리 신경 쓰신다구.” 나 “어머님이 대체 날 어떻게 신경 쓰신다는 거야? 난 전혀 모르겠는데?” 남편 “자기 태도부터 생각해봐. 며느리가 먼저 살갑게 해도 모자랄 판에 대우받을 생각부터 하잖아.” 엄밀히 말해 우리 부부 사이에 생긴 문제도 아닌데, 부부관계까지 망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자원한 모습은 잊고, 마음 상한 내가 어머님한테 퉁명스럽게 대꾸한 것만 기억하는 남편을 보면, 초록이 동색인 듯싶다. 남편도 어쩔 수 없는 걸까. 사실 남편하고 살 맞대고 산 지 5년이 지났지만 남편이 친구만도 못한 ‘남’처럼 느낄 때가 많다. 1년에 대면하는 시간이 모으고 모아야 7일도 안 되는 시집 식구들이야 오죽할까. 남편과 친정 식구들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남편을 아직 어색해하고 어려워한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대하고 더 잘해주려 애쓴다. 나도 여행길이면 엄마, 아빠 선물은 못 사도 시부모님 선물은 비싼 것으로 챙겼다. 그렇게 하는 게 도리라 생각했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된 만큼, 그 시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진짜 ‘가족’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시집 식구들은 다르다. 어색해하기만 할 뿐, 나를 어렵게 대하진 않는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5년이 지난 내게 남은 건 얼룩진 기억뿐이다. 혹시 나 때문에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그것 때문에 날 이리 홀대하시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바뀐 것도 없이, 이대로 또 명절을 보낼 수는 없었다. 나 “이번 추석은 따로 보내자. 자기는 자기 집에 다녀와. 난 일단 우리 집에 갔다가… 혼자 시간을 보내야겠어.” 남편 “무슨 말이야. 갑자기 왜?” 나 “갑자기가 아냐. 그동안 계속 고민했던 거라구.” 남편 “우리 엄마 때문에 그래? 아니 그래도 명절에 시댁에 안 가겠다는 며느리가 어디 있어?” 나 “가부장적 질서, 그거.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난, 어느 정도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무리 내가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도 현실은 현실이다, 적응하며 바꿔가자, 그렇게 각오했다구.” 남편 “근데 왜 이러는데?” 나 “이제 더 못 하겠어. 자기가 우리 집에 갔을 때 일종의 손님이 되는 것처럼, 나도 자기 집에 가면 손님인 건데 왜 양쪽 부모님의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이리 다르지? 내가 자기네 집 집안일하고 자기 밥이나 지어주는 식모 하겠다고 결혼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 부모님이 자기를 존중하고 아끼시는 것만큼 자기네 부모님은 날 그리 대해주시지 않는 걸까? 왜 그렇다고 생각해?” 남편 “그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거야. 나도 정확힌 모르겠지만….” 나 “그러니까 우리, 떨어져서 생각해보자. 어머님에게도 뭔가 계기를 만들어드려야 해.” 남편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나 “아무튼 이번엔 그렇게 해!” 내가 추석 연휴에 시집이 아닌 베트남으로 떠나는 건 5년 동안 나를 함부로 대한 시집에 날리는 옐로카드다. 막돼먹은 며느리의 일탈이 아니란 말이다. 난 이번 명절이 우리가 진정 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막돼먹고 싶지 않은 AA형 며느리
남편 얼쩡거려도 쿨하게 거절
나의 선의를 전의로 바꾸는
어머님의 말씀, 저리 가라!! 식모 하겠다고 결혼했나?
서운함보다 굴욕감 앞서니
명절엔 몸보다 맘을 다친다
이번엔 혼자 시간 보낼 테다 시어머니 “넌 왜 이렇게 꺼칠해지니. 고기도 좀 푹푹 먹어야지.” 남편 “괜찮아요. 그런데 이거 맛있다. 이 사람하고 같이 했어요? 이 사람 음식 잘하지?” 시어머니 (질문엔 답도 없이) “이것도 먹어봐. 나이 들수록 몸에 좋은 거 먹어야 돼.” 남편 “잘 먹고 다녀요.” 시어머니 “잘 먹고 다니기는. 밥해 먹을 시간이나 있겠니. 자자, 이것도 먹고.” 딸이었을 땐 명절이 지난 뒤 살이 쪘는데, 며느리가 된 뒤 명절은 다이어트 기간이었다. 명절 밥상만큼 반찬이 멀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명절의 주요리들은 죄다 ‘웃어른’ 앞에 놓여 있기 일쑤다. 내 앞에 놓인 자잘한 나물이나 김치류 위로 팔을 뻗어 굴비나 갈비찜에 젓가락을 꽂는 일은 마치 ‘막돼먹은’ 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내가 다 만든 음식인데도 떳떳하게 갈비 한 대 못 뜯는 명절 밥상에서, AA형인 나는 위축되고 고립되고 밥맛이 떨어진다. 시어머니가 그나마 나와 가깝게 놓여 있던 반찬까지 재배치하고 나면, 쌀밥이나마 배를 좀 채워볼까 싶었던 마음마저 달아난다. 누가 봐도 남편은 거리낌없이 식사를 하고 그 옆에 주눅들어 앉은 나는 밥그릇만 퍼대고 있는 걸 알 텐데, 그래서 반찬 공수가 필요한 이는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라는 것을 알 텐데,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반찬을 나르느라 여념이 없다. 이것도 저것도 죄다 아들 먹으라고 아들 앞으로 옮겨오시는 걸 보면, 남편과 나 사이엔 어쩔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느낀다. “얘 밥 좀 더 갖다 줘라.” 나는 아직 반 공기도 못 먹었는데, 밥 한 그릇을 그새 다 비운 남편을 위해 밥을 뜨러 일어나야 하는 게 나의 명절적 소셜 포지션임을 나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남편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나 “뭘?” 남편 “내가 모를 줄 알아? 왜 집에만 갔다 오면 짜증이야?” 나 “내가 언제? 뭘?” 남편 “어우 됐다. 그만하자. 나도 자기 눈치 보느라 진짜 힘들다는 것만 알아둬.” 나 “눈치? 무슨 눈치를 얼마나 봤다고 그래?” 남편 “내가 자기 눈치 보니까 엄마가 어쩔 줄 몰라 하시잖아. 꼭 그렇게 해야겠어? 좀 살갑게 하면 안 돼?” 나의 진짜 명절 증후군은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다. 설거지하는 것도 안 힘들고, 음식 하는 것도 안 힘들다. 하지만 명절 내내 여전히 그냥 ‘남의 집’에 불과한 시집과 여전히 그냥 ‘남’에 불과한 시집 식구들에게 당한 자존감의 훼손은 명절이 끝난 뒤에도 꽤 오래간다. 설거지와 반찬 등에 얽힌 시월드의 여러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들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치사하고 구차한 일이다. 그래서 꼭 이상한 트집을 잡아 남편에게 화풀이를 한다. 남편과 차분히 얘기를 해보려 했다. 나 “짜증 내서 미안. 내가 괜한 트집 잡았어. 인정해.” 남편 “흠… 나도 미안해.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았을 텐데 이해해주지 못해서.” 나 “근데, 자기는 내가 뭐 때문에 힘든지는 알아?” 남편 “일이 많아서 그랬겠지. 음식 하고 설거지하느라. 우리 부모님 눈치도 봐야 했고.” 나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냐. 어머님은 왜 그렇게 날 함부로 대하실까? 정말 이해가 안 가.” 남편 “좋게 생각해. 엄마도 나름 며느리 신경 쓰신다구.” 나 “어머님이 대체 날 어떻게 신경 쓰신다는 거야? 난 전혀 모르겠는데?” 남편 “자기 태도부터 생각해봐. 며느리가 먼저 살갑게 해도 모자랄 판에 대우받을 생각부터 하잖아.” 엄밀히 말해 우리 부부 사이에 생긴 문제도 아닌데, 부부관계까지 망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자원한 모습은 잊고, 마음 상한 내가 어머님한테 퉁명스럽게 대꾸한 것만 기억하는 남편을 보면, 초록이 동색인 듯싶다. 남편도 어쩔 수 없는 걸까. 사실 남편하고 살 맞대고 산 지 5년이 지났지만 남편이 친구만도 못한 ‘남’처럼 느낄 때가 많다. 1년에 대면하는 시간이 모으고 모아야 7일도 안 되는 시집 식구들이야 오죽할까. 남편과 친정 식구들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남편을 아직 어색해하고 어려워한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대하고 더 잘해주려 애쓴다. 나도 여행길이면 엄마, 아빠 선물은 못 사도 시부모님 선물은 비싼 것으로 챙겼다. 그렇게 하는 게 도리라 생각했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된 만큼, 그 시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진짜 ‘가족’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시집 식구들은 다르다. 어색해하기만 할 뿐, 나를 어렵게 대하진 않는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5년이 지난 내게 남은 건 얼룩진 기억뿐이다. 혹시 나 때문에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그것 때문에 날 이리 홀대하시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바뀐 것도 없이, 이대로 또 명절을 보낼 수는 없었다. 나 “이번 추석은 따로 보내자. 자기는 자기 집에 다녀와. 난 일단 우리 집에 갔다가… 혼자 시간을 보내야겠어.” 남편 “무슨 말이야. 갑자기 왜?” 나 “갑자기가 아냐. 그동안 계속 고민했던 거라구.” 남편 “우리 엄마 때문에 그래? 아니 그래도 명절에 시댁에 안 가겠다는 며느리가 어디 있어?” 나 “가부장적 질서, 그거.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난, 어느 정도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무리 내가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도 현실은 현실이다, 적응하며 바꿔가자, 그렇게 각오했다구.” 남편 “근데 왜 이러는데?” 나 “이제 더 못 하겠어. 자기가 우리 집에 갔을 때 일종의 손님이 되는 것처럼, 나도 자기 집에 가면 손님인 건데 왜 양쪽 부모님의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이리 다르지? 내가 자기네 집 집안일하고 자기 밥이나 지어주는 식모 하겠다고 결혼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 부모님이 자기를 존중하고 아끼시는 것만큼 자기네 부모님은 날 그리 대해주시지 않는 걸까? 왜 그렇다고 생각해?” 남편 “그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거야. 나도 정확힌 모르겠지만….” 나 “그러니까 우리, 떨어져서 생각해보자. 어머님에게도 뭔가 계기를 만들어드려야 해.” 남편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나 “아무튼 이번엔 그렇게 해!” 내가 추석 연휴에 시집이 아닌 베트남으로 떠나는 건 5년 동안 나를 함부로 대한 시집에 날리는 옐로카드다. 막돼먹은 며느리의 일탈이 아니란 말이다. 난 이번 명절이 우리가 진정 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막돼먹고 싶지 않은 AA형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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