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우리집 설거지 당번은 고1짜리 아들이다. 으레 자기 차례인 줄 아는 터라 내가 저녁밥을 짓고 있노라면 어느 새 부엌에 나타나 잔소리를 퍼붓는다. 반찬 가짓수를 줄이라고 압력을 넣는 건 기본이다. 때론 식구들 앞에 하나씩 놓아둔 앞접시를 치워 찬장에 넣어 버리기까지 한다. 푸짐한 식탁은 설거지 당번의 스트레스로 직결되는 모양이다. 어찌되었건 당번의 위세에 눌려 그만 소박한 식탁을 차리게 되니 이 또한 즐거운 일!
녀석이 처음 설거지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아슬아슬한 손놀림으로 그릇 몇 개를 씻어 싱크대에 얹자 마자 학교 알림장을 들이밀며 “엄마, 사인해 주세요”하는 거였다. 온 식구들의 배꼽이 빠졌다. 알고 보니 일요일 저녁 설거지가 선생님이 내준 숙제였다나. 일찍이 이렇게 가정 노동에 대한 감수성을 주목한 선생님이 계셨을까? 미래 사회의 성역할 변화에 대한 예지력을 지닌 분이 아니었나 싶다.
설거지를 분담하게 되면서 녀석은 달라졌다. 일요일 저녁 아니라도 밥 먹고 난 후 식탁 정리를 맡기도 하고,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챙겨넣는 일도 한다. 반가운 변화다. 단순히 엄마가 해주는 그릇을 받고, 음식을 먹던 입장에서 어설프게나마 부엌 노동의 주체로 태어나는 과정이 아닌가?
사위가 내 딸을 위해 설거지 하는 건 괜찮지만 내 아들이 며느리를 위해 설거지 하는 장면은 아직 불편한 엄마들을 많이 본다. 우리 친정 엄마도 그러셨다. 아들에게 태연히 설거지를 주문하는 며느리가 섭섭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던 엄마가 변하셨다. 지난해 추석, 노모와 외동 며느리인 올케가 동동거리는 걸 보다 못한 내 남동생이 팔을 걷어 붙이고 부침개 부치기와 설거지에 뛰어들었다. 조카 녀석까지 엄마 아빠의 명절 노동에 기꺼이 동참해 온갖 재롱을 피워내니, 그 때 친정엄마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 함께 하는 명절 노동은 파티라는 걸 말이다.
가정 교육을 할 땐 가정 노동 교육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 아들의 설거지가 중요한 것은 앞으로 맞이할 며느리의 삶의 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 며느리의 남편인 내 아들이 요리엔 서툴러도, 설거지 정도는 맡아 놓고 하는 그런 가정 노동 주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이건 이제 선택 사안이 아니다. 가사 노동을 나누지 않는 날엔 일하는 며느리의 ‘아들 리콜’ 요청에 직면하게 될 시대, 이미 시작된 것 아닌가?
박어진/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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