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현실 알리는 전시회 열려
방 한가운데 놓인 검정색 상자 안에는 구멍이 나있다. 구멍 안에 손을 넣기 전에는 뭔가 놀랄만한 물건이 잡힐까 두려워하지만 정작 손을 넣고 보면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오브제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누구나 한번쯤 겪는 ‘장애포비아’(장애로 인한 두려움)를 표현한 것이다.
장애여성들의 현실과 문제를 알리는 전시회가 지난 13일에서 16일까지 서울 나루아트센터 전시장에서 열렸다. ‘일평단심: 한평의 공간+단단한 마음’이라는 제목을 단 이 행사는 지난 98년 창립한 장애여성들의 모임인 장애여성공감이 올해로 3번째 여는 ‘난장’ 이었다.
장애여성의 독립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회는 ‘현실, 공간, 의식, 관계’라는 개념으로 총 4개의 방을 꾸몄다. 첫번째 방에는 장애여성을 둘러싼 현실 사회의 편견과 시선을 담아냈고 두번째 방에서는 장애여성의 독립적인 공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번째 방에서는 장애여성들의 성욕을 다뤘고, 네번째 방에서는 장애여성들이 맺는 다양한 관계에 대한 비디오를 틀었다.
특히 눈에 띈 작품들은 두번째 방의 이야기였다. 장애여성, 비장애여성이 함께 만든 이 방은 ‘자기만의 방’이 없던 장애여성들이 독립적인 공간을 만든 뒤 겪은 경험담과 자신들에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을 주로 표현했다. 옷장 안에 붙어있는 생리대엔 ‘애도 못 낳을 건데 자궁 적출하시죠’라든지 ‘생리 다시 하면 가만 안 둘 거야’는 등의 글씨가 씌여있다. ‘공감’ 운영회원 나김영정씨는 “장애 여성을 둘러싼 주위의 시각과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명 아크릴판 안에 지점토 가구를 들여놓은 작품 ‘당신의 사생활은 안전하시나요?’에는 독립한 장애여성의 삶이 오롯이 숨쉬고 있었다. 남들이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어진 방 안에는 휠체어가 쓰러져있고, ‘장애도 심한데 혼자 살지 말고 같이 살 사람 구하는 게 어때요?’라든지 ‘이런 책은 왜 봐요?’ 등의 글귀가 적혀있다. 이 작품을 만든 김상(25)씨는 혼자서는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이다. 그는 2년에 걸쳐 가족을 설득한 끝에 지난해부터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독립을 하고 나서도 사회적으로 여성장애인의 독립에 필요한 지원이 너무 부족하고, 중증장애여성의 독립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이 있다”며 “매일 와 생활을 돕는 활동보조인들 역시 말도 없이 오겠다는 약속을 어기거나 내 공간과 생활에 대해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바라는 바는 사회적 관심과 배려다. 김씨는 “장애여성을 너무 수동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강하다”며 편견없는 시선을 당부했다.
‘공감’의 박영희 대표는 “장애여성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독립해 살아나가기 위해서 단 하나 원하는 게 있다면 한 평의 공간”이라며 “독립하고 싶고, 내 삶의 주체로 살아가려는 장애여성의 단단한 결심이 어떤 것인지 이번 전시회로 전하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유진 기자
장애여성공감이 연 전시회 ‘일평단심’에 출품된 작품. ‘자위기구’란 제목의 이 작품은 휠체어에 앉아 구석구석 자신의 몸을 바라보거나 느낄 수 있는 도구들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사진 장애여성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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