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오래된 벗이 하나 있다. 하도 오래 보다 보니 전화선을 타고 오는 목소리만으로도 지금 그 애의 영혼이 흐린지, 맑은지, 풍랑이 이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되어버린 사이다.
20년 세월을 때론 곁에서, 때론 멀리서 친구의 삶이 끊어질 듯 가까스로 굽이치며 흘러가는 것을 지켜봐 왔다. 나는 친구가 마음 속에 순수하고 맑은 ‘별’을 갖고 태어났다고 여긴다. 그 순수함과 맑음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친구의 삶은 늘 평탄치가 못했다. 하지만 한번도 엄살피우지 않고-속으로야 어떤 전쟁을 치루는지 알수 없어도-자기 업을 꿋꿋이 떠안고 가는 친구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심상치가 않았다. 이리저리 살피며 안절부절하는 내가 신경쓰였는지, 친구는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대수롭잖게, 하지만 분명 돌쩌귀를 들어올리듯 힘겨웠을 말문을 열었다.
친구에겐 어린 딸이 있다. 엄마를 닮아 똑똑하고 야무진 딸은 친구의 자랑이자 보람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 딸이 학교에서 잔뜩 시무룩해져 돌아왔다. 물어도 말을 않더니 한참만에야 그날 있었던 일을 털어놨다. 개구쟁이 초등학교 2학년생들이 담임 선생님과 “복도에서 뛰지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이들이 약속을 지킬 리 만문했고, 화가 난 선생님은 한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약속의 중요성’을 훈계하다 ‘약속 안 지키는 배신자’를 언급하며 이런 예를 들었다는 것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기로 약속하고 결혼한 부부가 중간에 헤어졌다고 해봐. 그럼 어떻게 되겠니. 배신자가 되는 거야.”
가슴 속 소용돌이를 수습하느라 쩔쩔매는 친구에게 똑똑한 딸 아이는 제딴엔 위로라고 이런 말까지 덧붙이더라는 거다. “선생님두 참, 우리 반 애들 중에 엄마 아빠 이혼한 애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같은 건 못하시나 봐.”
친구가 남기고 간 식어버린 허브차를 치우다 내 마음도 스산해졌다. 3쌍이 결혼하면 1쌍이 이혼한다는 요즘, 그 담임선생님만은 어찌 저리 10년전 그대로일까. 이혼에 대한 생각이야 사람마다 다를수 있고, 그 책임은 당사자들이 지는 거지만, 아무 책임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문화적 안전망을 보다 섬세하게 짜나가는 노력도 필요한 게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에 나라도 친구 딸의 또 다른 교사가 되어본다. “은아,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평생 수 없이 약속하고 또 어기고 살아간단다. 네 엄만 약속을 지키려 최선을 다하다 어느날 문득 그게 자기 인생의 더 큰 약속과 어긋나 있다는 걸 깨닫곤 자기 삶에 충실하려 했을 뿐이야. 하루에도 무수히 거짓 약속을 남발하는 저 나랏일하는 높은 어른들보다 너희 엄만 비교도 안되게 진실하단다.”
손윤정/ 프리랜서 작가 soksaram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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