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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분단의 벽 넘는 여성들 응원하려 남성대표로 깃발”

등록 2016-05-23 19:48수정 2016-05-23 21:38

‘2016 여성평화걷기’ 추진위원 우희종 교수
‘2016 여성평화걷기’ 추진위원 우희종 교수
[짬] ‘2016 여성평화걷기’ 추진위원 우희종 교수
“한반도의 견고한 분단의 벽과 차별을 풀기 위해 누군가가 물꼬를 터야 하는데, 가장 적임자가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가 ‘2016 여성평화걷기 행사’ 추진위원이 된 이유다.

미국 유학시절 소수자 문제 관심
서울대 부임뒤 ‘여성학’ 연구 참여
“전공 면역학에서도 ‘여성성’ 중요”

우리민족서로돕기 공동대표도 맡아
28일 임진각 평화누리길 걷기 참여
“남성도 함께 남북오가는 민족축제로”

‘2016 여성평화걷기’(wpwalk.kr)는 오는 28일 경기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참가자들은 “비극의 땅 비무장지대(DMZ)가 상생과 치유의 땅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기원하며 이날 오전 10시부터 생태탐방로와 평화누리길 6㎞를 걷는다.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인 24일을 계기로 잡았다. 지난해 ‘위민크로스디엠제트’(WCD) 행사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이 북쪽에서부터 휴전선을 종단해 남으로 왔었다. 올해는 종단 행사는 없지만 ‘한반도의 대결과 분열 구도를 여성들의 힘으로 화해와 협력, 대화의 구도로 바꾸자’는 취지는 동일하다.

그런데 왜 남성이자 과학자인 우 교수가 이 행사의 추진위원이 된 것일까. 그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을 거쳐 자연과학 분야 교수로서는 처음으로 상임공동의장을 지냈으며,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조작 문제, 광우병 위험성 경고, 주한미군의 탄저균 유입 비판을 비롯해 최근 살인 가습기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선 굵은 현안’들에 대해 주로 발언해왔다. 우 교수와 여성을 잇는 연결고리는 뭘까.

우 교수는 “사실 오래전부터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했다. 출발은 성적 소수자 문제였다. 미국 유학 시절인 1980년대 말 ‘성적 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눈을 떴다. “그들의 주장이 너무나 당연한데, 당연한 인간 권리를 얻기 위해 험한 투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죠.”

그는 92년 귀국해 서울대 강단에 서면서 자연스럽게 여성 문제에 관여하게 됐다. 학내에서도 여성이 ‘소수자’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 사회대 여성학협동과정 겸임교수 및 여성연구소 겸임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여성학 교수들과 함께 남성성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소수자 여성’에 대한 우 교수의 관심은 그의 전공이 수의학 중에서도 면역학인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면역학은 생명체가 어떻게 자신을 유지하고 지키는지를 연구한다. 그러기에 주체, 자아에 관심이 많다. 우 교수는 주체와 자아에 대한 관심이 점차 ‘생명 다양성의 중요성’ 및 ‘과학의 한계’라는 주제로 이어졌다고 했다. “우리 근대사회는 합리적 이성과 남성성이 강조되는 사회입니다. 특히 근대과학은 분석적 환원론에 근거해 사물을 다 쪼개서 구성원소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근대과학의 ‘분석적 환원론’은 한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 삶의 문제는 관계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어 각각을 쪼개어 볼 수 없는 부분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은 총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성이 지닌 관계지향성과 감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성이 근대사회의 태생적 한계와 부족을 극복하고 치유와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계의 단절과 극복’이라는 점에서 분단 현실도 우 교수가 깊이 성찰해온 화두다. 그가 지난해부터 대북지원 및 평화 엔지오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도 맡게 된 연유다. 그는 “남북 문제, 평화 문제, 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질곡이 분단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 교수는 한국 사회의 여성차별도 분단이 만든 질곡 중 하나라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 정도의 생활 수준과 경제적 안정을 이룩한 곳에서 이렇게 여성에 대한 차별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는 분단과 대립으로 고통받는 당사자인 여성이야말로 한반도의 질곡을 풀 수 있는 주체라고 믿고 있다. 여성의 장점인 관계지향성과 감성이 남북관계에서도 단절을 극복할 근원적인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전쟁 이래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오간 이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91년 서울과 92년 평양에서 번갈아 열린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가 대표적이다. 그때 남북 여성 대표단은 서로 판문점을 평화적으로 통과해 행사에 참가했다. “다시 한번 남북의 여성들이 디엠제트를 서로 오가면서 남북 사회에 공감대를 이끌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여성들이 물꼬를 틀 때에만 정치와 이념이 하지 못한 ‘민족이 함께하는 축제’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평화걷기가 민족의 축제가 되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우 교수는 여성이 시작했지만 남성도 적극 참여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제가 여성평화걷기 행사의 추진위원을 맡은 것도 남성도 함께해야 할 일이라는 뜻에서입니다.”

우 교수의 노력이 깃발이 되어, 여성이 뿌리는 화해의 씨앗을 남성이 함께 안고 민족 화해의 큰길로 걸어가는 모습을 더욱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사진/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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