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말부터 여성 단체에 대한 ‘기부 피싱’을 촉발한 트위트 갈무리.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저는 페미니즘 후원 피싱의 제물이 되고 싶습니다.”
지난달 31일,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의 문자 후원함에 이런 내용의 메시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전날 한 누리꾼이 휴대전화에서 지정된 번호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1건에 3000원씩 기부되는 민우회 등 여성단체들의 ‘문자 후원’ 번호를 적고 “메갈(메갈리아)과 관련된 조직의 ‘기부 피싱’이니 주의하라”고 ‘거짓’ 트위터 메시지를 올린 게 발단이었다. ‘여성 운동’을 폄훼하는 이런 트위트에 반발한 누리꾼들이 너도나도 “자발적으로 피싱을 당하겠다”며 후원 동참 문자를 보낸 것이다.
민우회 쪽은 “이날 하룻동안 도착한 메시지만 830건으로, 지난 1월부터 7월30일까지 온 메시지 건수(737건)보다 많았다”고 28일 밝혔다. 문자 1건당 3000원씩 기부가 되니, 이날 후원된 금액만 249만원에 이른다. 민우회에 답지한 문자 후원은 8월(지난 24일 기준)엔 1364건으로 더 늘었다. 한국여성의전화도 사정은 비슷하다. 매달 100건 안팎이던 문자 후원 수가 7월엔 1875건, 8월엔 1800건으로 폭증했다. ‘기부 피싱’ 시비가 도리어 여성단체들의 문자 후원을 홍보해 준 셈이 된 것이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나아가 기부 피싱 논란을 놀이처럼 즐기기도 했다. 민우회가 공개한 메시지 내용을 보면 “단체 활동을 응원한다”는 얘기가 대다수지만, “어이쿠 가짜 페미니스트인 내가 진짜 페미니즘 단체에 후원해버렸네?” ”한화가 이기는 날마다 문자할게요” “해리포터 생일이라서 기부” “삼겹살 먹고싶다” 등 엉뚱하고 기발한 내용도 많았다. 기부자들 스스로 이런 메시지를 갈무리해 다시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민우회 쪽은 맨 처음 기부 피싱 글을 남긴 이용자에 대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한국의 페미니즘을 도와줬다”고 글을 남겼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후원금은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여성폭력 근절을 위해 잘 쓰겠다”고 말했다. 기꺼이 ‘기부 피싱’에 낚이고 싶은 이들은 #2540-3838(민우회), #2540-1983(여성의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번호 앞에 반드시 #을 넣어야 메시지가 전송된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