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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페친 토크] 50년간 설거지 하는 여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등록 2016-09-22 10:11수정 2016-09-22 10:15

50년간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하는 한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여자는 한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은 설거지하는 여자의 손을 붙잡고, 아내는 마지못해 그릇을 놓고 남자를 따라가면서 웃는다. 여자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도시락을 챙기지 않은 딸을 뒤따라가다 중년이 된다. 흰머리가 늘어나고, 손녀가 태어나도 여자는 싱크대에서 그릇을 씻는다. 슬픈 영화 얘기가 아니다. 애경 주방 세제 ‘트리오’ 50주년 기념 이벤트 영상이다. 영상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나온다.

‘세월이 흘러 주방이 변하고, 식생활이 변하고, 위생관념이 변해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심을 이어가다. 50년 사랑 트리오.’

광고는 기업의 전략이 담긴 마케팅 도구이면서,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읽히는 사회적 콘텐츠다. <한겨레> 페이스북은 21일 오전 독자, 기업의 의견을 듣기 위해 트리오 광고 영상을 게시했다. 트리오 페이스북과 누리집에 게시된 50주년 기념 영상 조회 수는 총 12만8000회. 영상은 60초다. 한겨레 페이스북에는 의견 댓글 73개가 달렸다.

@손은숙: 축하 이벤트 영상이라~ 50년이 흐르는 동안 그렇게나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도 주방을 벗어나지 못한 여자에게 뭐라고 축하를 하라는 걸까요? 자신의 삶이 아니라 가족들 뒤치다꺼리에 평생을 바친 걸? 아직도 이런 식의 광고는 너무도 많아요. 가끔 TV를 보다가 울컥하게 되는데 이건 좀 세네요~!

@Jeongmi Lee: 남성 조리사도 많아진 지금 오십년이 지나 다양한 사람들이 트리오를 쓴다는 콘셉트이면 좋았을 텐데. 실제로 저희 가족도 오빠, 조카, 아버지께서도 설거지를 합니다. 이 광고는 여성은 ‘부엌데기’ 일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광고로 느껴져서 여성 입장에서는 비극물입니다.

@Hee Nam: (영상에서) 50년 동안 변한 건 싱크대뿐인가요? 세월이 변하듯 싱크대가 바뀌듯 성 인식도 바뀌어야 할 텐데 대중광고에선 바뀐 건 싱크대뿐이니 씁쓸하네요.

@김희영: 불쌍한 인생이죠, 저건. 숭고한 여성의 희생이라고 포장하지 맙시다.

@Kelly Donghyun Kim: 트리오는 생리대 못지않은 ‘여성 전용 제품'이군요. 심지어 딸조차 사용하는 장면이 없다니. 이 클래식한 구태의연함이란...-.-;;;

고정적 성 역할을 부각하는 광고라는 의견이 다수다. 애경 트리오 쪽 반응이 궁금했다. 취지는 무엇인지.

-성 역할 고정적인 광고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취지가 무엇인가요.

“우선은 성 역할 고정이라기보다는 트리오가 50년 동안 주방 세제 그 자리를 지켰다, 그걸 알리려는 것이고요. 트리오가 주방에 있지 딴 데 있진 않잖아요.”

-주방에 온 가족이 드나들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네. 아시다시피 영상이 몇 분짜리도 아니고 (60초짜리고요). 성 역할 고정이라기보다는 1966년 탄생해서 계속 트리오가 있었다는 것이 기획 의도입니다.”

같은 답변의 되풀이다.

-트리오가 지킨 자리에 여러 가족 구성원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요?

“그것은 여성이라기보다는 어머니를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

-어머니도 여성입니다만….

“그렇지요. 나타내고 싶은 것은 여자라기보다는 ‘트리오’가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또 같은 대답이다.

-페이스북에 부정적인 반응이 댓글로 올라오고 있는 것은 아시지요? 기획 의도와 달리 반응이 부정적이라면 광고 방식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광고는 보시는 사람들, (광고) 타겟이 있고 타깃이 아닌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타깃) 아닌 사람이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데 모두를 충족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타깃이 누구인가요?

“여기서 타깃이라는 것은… 주방에서 쓰고 있는 제품이 50주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거예요.”

두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답은 같았다.

댓글을 단 <한겨레> 페친 @손은숙님에게 광고주에게 하고 싶은 말을 메신저로 해달라고 했다. “여성 상위 시대라고들 말하죠. 하지만 본인들이 만드는 광고 속 여자들이 어디쯤 서 있는지 한번 돌아보시죠?”

“여성은 밖에서 아무리 능력 있고 중요한 일을 해도 집에 오면 가사와 육아를 책임져야 한다는 고정관념. 아내와 남편이 같이 해야 될 일을 아직도 여성만이 해야 할 일로 당연시하는 점이 울컥해요. 주변에 맞벌이 부부들을 보면 가정 내에서 가사나 육아는 당연히 여성 몫이고, 남성은 도와주면 고맙고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체념하는 여성들을 많이 봤어요.” (@손은숙)

지난해 금호타이어는 ‘전구 교체할 땐 아빠, 컴퓨터 교체할 땐 오빠, 타이어 교체할 땐 타이어프로’라고 광고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브랜드 ‘자주’(JAJU)는 지난 19일 공식 누리집에 “그러니까 그 여자가 뭘 알겠나. 밥물도 못 맞춰서 끼니마다 죽 아니면 생쌀인데! 쇼핑과 뷰티 빼고는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가…”라는 내용이 포함된 광고 게시물을 올렸다. (▶관련 기사 : “여자가 뭘 알겠나” 생활용품 브랜드 ‘자주’의 성차별 광고) 트렌드를 앞서가야 할 광고들이 양성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여성가족부는 한국광고PR실학회가 주관하는 ‘2016 올해의 광고상’에 양성평등 부문을 후원 신설한다고 지난 7월 밝혔다. 정부 홍보물 가운데 성차별적 요소가 있는지 평가하는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도 좋은 상업광고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홍보하기 위해 해당 부문을 신설했다.

올해의 광고상 양성평등 부문 심사를 맡은 최은섭 한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트리오 세제 광고를 어떻게 판단할까. “10, 20년 전만 해도 일방적인 광고를 내놓고 ‘우리 의도는 그것이 아니다’ 하면 모든 게 용서됐어요. 지금처럼 에스엔에스(SNS)로 소통하고 10분이면 댓글을 다는 시대에 그건 무책임한 거죠. 성 역할 고정관념이란 게 광고에도 있어요. 요즘에는 드물어졌지만 여자는 식품 광고에 주로 나오고 남자는 학습이나 전문적인 광고에 나오지요.”

-양성 평등적인 광고가 있을까요?

“위스퍼 생리용품 광고인데 광고에서 ‘여자답게 뛰어봐’라는 말이 나와요. 여자아이가 굉장히 씩씩하게 뛰어가요. 여자가 말하죠. ‘여자답게’라는 말을 ‘열심히 뛰라’는 말로 들었다고. 아쉽게도 이 광고는 국내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외국에서 만들어지고 한국에도 방영됐습니다. 최근 본 어떤 냉장고 광고도 좋았어요. 냉장고가 ‘엄마의 출장 스케줄을 관리해주고 아빠의 취미 생활을 도와준다’고 광고했는데 우리 고정 관념상으로는 아빠가 출장을 가고, 엄마는 그렇지 않잖아요.”

-성평등과 관련한 광고 가이드라인이 있나요?

“없어요. 과장광고, 폭력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있어요. 방송광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인쇄광고는 심의 기관이 다 달라요. 식품은 식약청, 화장품은 대한화장품협회 등에서 하지요.”

한국광고홍보학회 2013년 여름호에 실린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서 본 이 시대 엄마의 모습’을 보면, 광고에서 엄마가 수행하는 가정 내 역할은 주로 모성이다. 모성-가사-여가-사회활동 순이다. 천현숙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조교수, 마정미 한남대학교 정치언론국제학교 부교수가 2012년에 나온 광고 2576편을 분석한 결과는 이러하다.

“엄마로서의 역할은 주로 생활지도에 이어 지지와 지원, 자녀의 자기 계발 순이다. 광고에 등장한 엄마는 대부분 전업주부를 표방한다. 사무직, 전문직을 표방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광고에서 여전히 전업주부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엄마가 일하더라도 가정에 들어오면 헌신적으로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2012년 광고 2576편 가운데 대다수의 엄마(72.6%)는 웃고 있다. 트리오 광고 영상에서 50년간 설거지를 하고도 웃는 엄마처럼.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한겨레 페이스북 @hankyoreh

*한겨레 페이스북은 실시간 댓글로 페친들의 수다를 듣는 <페친 토크>, 한 명의 페친과 메신저로 집중 대화하는 <페친 대담>을 비정기적으로 합니다. 페친 토크와 대담을 바탕으로 디지털 기사를 전송합니다. 많이 참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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