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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여성들이여, 스스로 마초를 꿈꾸지마라

등록 2005-11-03 11:16수정 2005-11-03 11:16

자주 이용하는 버스가 있다. 그 버스의 운전기사는 대개 여성이다. 처음 그 버스를 이용할 때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서울에서 5년 이상을 살았지만, 버스 기사가 여성인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다. 족히 세 명은 되는 것 같다. 남성의 전유물로만 인식돼왔던 커다란 버스를 여성이 움직인다는 데서 한 번 놀랐고, 그 정도로 이제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데서 또다시 놀랐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날카로운 욕설이 버스 안 적막을 깼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운전 기사였다. 여자 목소리만 아니면 남자들이 보통 내뱉는 육두문자의 욕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욕설이었다. 신호등을 위반하고 끼어드는 택시 운전사에게 본능적으로 하는 욕설이었다.

일주일 후,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같은 버스에서, 다른 여성 운전자로부터 경험했다. 술 취한 취객에게 던지는 욕설이 남성 못지않았다. 이러한 두 번의 경험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또 다른 에피소드. 아는 여자 후배는 담배를 피운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그녀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대화를 할 정도로 솔직하다. 술과 담배를 즐기는 여자 후배가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녀의 ‘부자연스러움’이다. 여자들 사이에서 피우는 담배는 용기 있고, 때로는 자신 있는 아름다움으로까지 비춰질 정도다. 그런데 남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된다. 평소보다 욕설이 잦아지고, 담배 개비수가 많아지며, 들이키는 술잔이 거칠어진다.

이들에게는 묘한 자기 방어 기제가 있다. 여자이면서 남성의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자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심리적 자기 조정. 마초 사회에서는 마초가 되어야만 한다는 자신과의 타협 같은 게 존재한 것이다. 두 명의 버스 운전사도, 아는 여자 후배도 원래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여성의 ‘마초 되기’가 그들만의 잘못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남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스스로 마초임을 자처한 한국 사회가 문제가 아닐까.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지금이야 그 장벽이 많이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강한 남성 정신을 갖지 않는 이상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여성의 섬세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그래서 ‘여자로서 행복해요,'라는 외침은 가정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만 유효하지 않은가. 그것도 남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게 한국 사회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여성이 여성으로서 당당히 우뚝 서기 위해서는 스스로 마초 되기를 포기해야 한다. 마초의 가면을 쓰지 않고도, 남성과 당당하게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남성 중심의 마초 사회가 워낙 공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들이여, 남자 스스로 변할 수 있기를 기대하진 마라. 남성은 이미 마초가 돼 버렸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먹잇감을 포획하려는 맹수가 된 지 오래다. 여성들이여, 스스로 마초를 꿈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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