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2050여성살이] 뱃속 아이와 울고 웃으며 보낸 열달

등록 2005-11-08 19:00수정 2005-11-09 13:53

얼마 남지 않았다. 일주일쯤 뒤면, 수빈이가 세상에 나온다. 열 달 동안 엄마 뱃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기쁨과 슬픔을 맛보게 한 우리 아기가 세상에 나온다니! 남편과 나는 설레임으로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초보 엄마인 나는 열 달 내내 기쁨만으로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임신 일주일 만에 입덧이 시작돼 뭘 먹기가 힘들었고 속이 메스꺼워 직장 일을 하기도 힘들었다. 두 달이 지나고 입덧이 겨우 진정됐지만 남편이 어찌나 밉던지, 자고 있던 남편을 발로 찬 적도 있었다.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에도 서럽고 우울하기만 했다. 특히 남편과 떨어져 주말부부로 지내려니 나와 아기만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가끔 뱃속에서 꿈지럭거리는 아이 때문에 웃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버겁고 짜증스러웠다. 직장 동료 중 누구도 내가 임신부라고 사정을 봐 주는 사람이 없었고, 믿었던 친정 엄마까지도 나를 귀찮아하시는 것 같아 서글펐다.

엄마가 되기엔 아직 미숙한 걸까. 남편까지 내 심정을 몰라주고 일 욕심을 부린다고 타박을 하니 ‘이런 사람을 믿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싶어 임신 기간 내내 이혼이란 글자를 맘 속에 새기며 살았다. 반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때론 한심하기도 했다.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하는 모양이다.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나는 삶을 배웠다. 모든 아이의 엄마가 행복감뿐만 아니라 이런 불안감을 함께 갖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임신으로 또 배운 점이 있다면, 사랑이다. 힘든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하는 단 하나의 힘이 있었으니, 아이다. 수빈이는 엄마를 변하게 만들었다. 천방지축인 엄마를 태교에 좋다는 이유로 몇 시간씩 앉아서 종이 공예를 하게 만들었고, 새벽마다 일어나 기도를 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줄기차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한 적이 내 인생에 있었던가 싶다.

병원에서는 수빈이를 딸이라고 알려줬다. 내 아이가 딸이어서 좋다. 엄마를 따라 여성들의 삶을 위해 일하는 씩씩한 사람으로, 이웃과 사회를 위해 애쓰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수빈아, 엄마는 너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네가 살아야 할 세상이 녹록하지는 않겠지만 엄마가 항상 너와 함께 할게. 사랑한다. 내 딸 수빈아.’

이은하/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anti01@cho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