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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애국심으로 아이 낳으라’는 출산강요 캠페인

등록 2017-06-01 16:21수정 2017-06-01 22:26

인구보건복지협회·코바코 등 홍보
“저출산, 국가·사회 책임 묻지 않고
모성애 등 강조 거부감 불러” 비판
“정책, 변화된 여성 목소리 담아야”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 검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의료인 처벌을 강화하는 정부의 입법예고를 규탄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 검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의료인 처벌을 강화하는 정부의 입법예고를 규탄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결혼 후 1년 이내 임신해 2명의 아이를 30살 이전에 낳아 기르자.”

10여년 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현 인구보건복지협회)의 ‘1·2·3 운동’이다. 마치 제2의 새마을운동 같다며 ‘4’를 더해 “그러다 40살에 파산한다”는 패러디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사회 위기를 개인에 떠넘기는 ‘인구교육’ 관점의 저출산 광고나 캠페인이 끊이지 않는다. 인구교육은 경제성장 등 국가 필요에 따라 인구를 관리 대상으로 보는 교육을 이르는데, 가족계획사업이나 영유아·모성 보호, 성교육, 인구의학 등을 다룬다. 구조적 개선이 아닌, 거부감만 자아내는 잘못된 처방이란 지적이 인다.

과거 ‘산아제한’ 정책의 수행기관이었던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올해로 9년째 대학생들을 ‘생명사랑 서포터즈’로 뽑아 인공임신중절(낙태) 예방활동을 벌이고 있다(사진). 서포터즈는 “올바른 성 가치관 정립 및 생명존중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해” 협회가 수행하는 ‘국민인식 개선 및 홍보사업’ 중 하나다. 해마다 125~150명을 뽑고,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위촉장을 준 뒤 단체티, 현수막, 어깨띠, 리플릿 같은 홍보물품과 함께 80만원 이상의 활동비를 지원하고 연말엔 1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준다. 올해도 지난달 중순 25개팀(150명)을 선발했다. 모자보건법에 의해 보건복지부로부터 각종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공공기관인 협회는 국가 예산으로 이런 사업을 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9년째 진행 중인 인공임신중절(낙태) 예방사업 대학생 서포터즈 모집 광고
인구보건복지협회가 9년째 진행 중인 인공임신중절(낙태) 예방사업 대학생 서포터즈 모집 광고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의 저출산 공익광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가을께 방송된 ‘아이의 마음’ 편은 올초 지역별 가임기 여성수 표기로 논란이 된 ‘출산지도 사태’의 전조였다. 미래의 아이를 위해 임산부를 배려하자는 취지지만, 여성을 아이를 낳는 존재로만 본다는 비판이 일었다. 다른 공익광고들도 비슷하다. “출산율이 줄어 대한민국도 줄어든다”며 출산율 수치를 강조하거나, “2050년이 되면 생산가능 인구 1.4명당 부양노인 인구 1명”라며 출산을 권한다. 또 다른 광고는 “자녀는 국력”이라며 아예 “출산으로 가정도 나라도 지켜주세요”라 호소한다. 노동시간을 줄이자거나 직장·가정 내 양성평등을 이루자는 식의 국가나 사회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없다.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데다, 저출산 원인을 생명경시 풍조에서 찾으려는 후진적 관점이다. 종교계 일부가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저출산 인식을 바꾼다며 출산·양육 수기를 공모(서울 강남구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 보고서에서 “저출산 문제를 개인이나 여성 탓으로 돌리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의 저출산 공익광고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의 저출산 공익광고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는 책 <정해진 미래>에서 “인구교육은 물론 필요하나 인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도에서 그쳐야지 ‘아이를 많이 낳아야겠다’는 식의 당위로 흘러선 안 된다. 이런 광고나 캠페인은 국가와 개인의 이익이 맞아야 효과를 내지만 지금은 아니다. 감성에 호소하는 건 1970년대의 반복”이라 했다. 김영미 연세대 교수(사회학)도 “출산율 반등에 성공하는 국가의 공통점은 사회 전체가 성평등적 방식으로 변했다는 데 있다. 출산의 도구로 여성의 몸을 볼수록 여성들은 더 출산을 꺼린다. 정책은 여성들의 변화된 선호와 지향, 목소리를 담아내고 이를 기업과 사회, 국가가 수용하는 방식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10여년 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2005년 현 ‘인구보건복지협회’로 이름 변경)의 ‘1·2·3 운동’. 마치 제 2의 새마을운동을 벌이는 듯하다며 ‘1·2·3’에 4를 더해 “그러다 40살에 파산한다”는 등의 패러디가 만들어졌다(아래).
10여년 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2005년 현 ‘인구보건복지협회’로 이름 변경)의 ‘1·2·3 운동’. 마치 제 2의 새마을운동을 벌이는 듯하다며 ‘1·2·3’에 4를 더해 “그러다 40살에 파산한다”는 등의 패러디가 만들어졌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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