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편의점에 여성용 생리대 릴리안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 취업준비생이었던 이아무개(34)씨는 저렴한 가격에 이끌려 2015년께부터 줄곧 릴리안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얼마 뒤부터 생리량이 차츰 줄더니 이젠 생리가 거의 사라졌다. 이씨는 “지금은 반나절 동안 소형 패드 1개만 써도 될 정도로 양이 줄었다”며 “한달에 5~6일을 빼곤 약을 먹어야 할 만큼 복통도 심해졌다”고 말했다.
#2. 30대 초반의 최아무개씨는 마트에서 대량 구매한 릴리안 생리대를 올해 초부터 3~4개월간 사용했으나 생리 기간이 일주일에서 2~3일로 줄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릴리안 부작용을 의심하게 된 최씨는 6~7월께 생리대를 교체했다. 최씨는 “교체 뒤 고인 피가 나오듯 한두달간 생리를 엄청 많이 했다”며 “생리량이 줄어든 시기와 릴리안 생리대를 쓴 시기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 부작용 주장 피해 사례 줄이어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을 주장하는 피해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22일부터 피해 접수를 하고 있는 여성환경연대엔 이틀째인 23일까지 3000여건이 접수됐다. 2014년 첫선을 보인 릴리안은 편의점과 올리브영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1+1 마케팅’ 덕에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최아무개(23)씨는 “올리브영에서 거의 1년 내내 1+1 행사를 할 뿐 아니라 포인트까지 적립할 수 있어 자주 구매했다”고 말했다.
릴리안은 저소득층에도 대량 지원됐다. 2016년 ‘깔창 생리대’ 문제가 불거진 뒤 릴리안 제조업체인 ‘깨끗한나라’는 지난해 8월부터 경기도 남양주시와 서울시 등 4곳의 공공기관과 협약을 맺고 생리대를 지원해왔다. 지난 1년간 남양주시는 2만4576팩의 생리대를 지원받아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등에 지원했다. 서울시 역시 매달 500여팩을 한부모 가정의 자녀와 청소년 등에게 지원했다고 한다.
■ 불안 확산에도 판매중단 조처 안 돼 논란이 확산되자 보건당국은 곧바로 품질검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애초 11월에야 생리대 정기 품질검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소비자 불안이 커지자 그 시기를 앞당겼다. 식약처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이 생리대를 제조할 때 쓰는 접착제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휘발성유기화합물에 대한 분석 방법조차 확립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위해성 여부 확인에만 1년가량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 물질은 미국, 유럽연합 등 세계적으로 관리 기준이 없는 물질”이라며 “조만간 전문가 회의를 열어 역학조사 등 필요한 조치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위해성 평가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판매중단 등의 조처도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는 태도다. 이를 두고 보건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던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식약처의 조처와 관계없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이날부터 릴리안 생리대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 커지는 집단소송 움직임 뿔난 소비자들은 집단소송에 나섰다. 소송을 준비하는 법무법인 ‘법정원’에는 23일 하루에만 구체적인 피해 내용 등을 묻는 설문조사에 640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소송 당사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구매 영수증, 병원 진단서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릴리안 생리대의 주요 판매처로 꼽히는 올리브영은 구매 증명이 비교적 용이하다. 올리브영은 카드결제 내역서에 있는 결제 날짜, 시간, 금액 등을 말하면 매장에서 영수증을 재출력해준다. 포인트를 적립했을 경우엔 고객센터를 통해 구매 내역을 받을 수 있다.
한편, ‘깨끗한나라’는 이날 환불·리콜 계획이 없다는 태도를 뒤집고 오는 28일부터 전 제품을 환불하겠다고 밝혔다. ‘깨끗한나라’는 “제품 개봉 여부, 구매 시기, 영수증 보관 여부에 관계없이 본사 소비자상담실과 릴리안 웹사이트에서 환불을 신청하면 관련 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